오피니언 사설

여성만의 잔치 안 되게 남성들이 귀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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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계를 넘어:동서남북'을 주제로 한 세계여성학대회가 오늘부터 5일간 서울 이화여대.연세대.서강대에서 열린다. 78개국에서 2200여 명이 참가한 서울대회에는 570개 패널에 90개국 2100개의 논문 초록이 쏟아진다고 하니 양적.질적 면에서 명실 공히 매머드급이라고 할 만하다.

학자들로 이뤄지는 일반 학술대회와 달리 세계여성학대회는 관련 학자는 물론 정치인.운동가.정책결정자들까지 함께해 '여성 유엔총회'라고 불릴 정도다. 국내 여성학의 역사가 20년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중 있는 대회를 아시아 지역 최초로 유치한 것은 우리 여성계의 총체적 역량이 그만큼 상당함을 말해 준다.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정하면서 비로소 세계는 '여성'을 사회적 어젠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약자의 지위에서 불평등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이후 30년을 지나오며 이제 여성들은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적인 벽 허물기를 뛰어넘어 서로 보듬고 함께 살아가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는 이번 서울대회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보완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21세기의 새 틀을 도출해 내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더욱이 이번 서울대회는 9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세계여성회의에 이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들의 큰 잔치이기도 하다. 아시아 각국 여성들의 제 문제에 대한 집중과 이론화 작업으로 여성학이 지금까지의 서구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관점을 반영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울대회가 '여성들만의 큰 잔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의 상당수는 남성이다. 다양한 지구적 관심사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성적 접근과 대안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남성들도 귀를 크게 열어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