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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통신] "애 낳기가 너무 두려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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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슈프 왈라디 (내 아이 좀 보세요)." 지난 21일 바그다드 북부 사담시티에 있는 시립병원 앞. 한 여인이 아이를 들어 내게 보여줬다. 바싹 마른 아이의 다리가 뒤틀어져 있다.

"두 살이 다 돼가는데 서지도 못하고, 엄마 소리도 못해요. " 바키르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인다. 병원에서 여러번 진찰을 받았지만 원인도 모르고 특별한 약도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첫 애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더 이상 아이 낳기가 두려워요. " 바키르의 엄마는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다산(多産)을 '리즈크 알라(알라의 축복)'로 간주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출산 포기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 지위의 추락을 의미한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바키르와 함께 담당의사를 만났다. 눈과 입 속을 관찰하고 청진기를 아이의 가슴과 등에 대보는 것이 전부였다. 내과담당 아우스 카림(43)박사는 "음식을 잘 챙겨주라"는 한마디와 함께 구호단체에서 보내온 비타민 한 병을 엄마에게 건냈다.

"솔직히 병명과 원인도 확실하지 않아요." 카림 박사는 바키르의 엄마를 의식해서인지 내게 영어로 말을 했다. "경제제재와 전쟁 탓에 방사선 촬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확히 진단해 처방을 내리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박사는 "최근 남부 바스라는 물론이고 바그다드 지역에서도 암과 백혈병 발생 및 선천성 기형아 출산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방사능 오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1991년 걸프전부터 이번 전쟁까지 미군이 사용한 엄청난 양의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이라크의 대기.지하수.농지가 방사능에 노출됐다"면서 "이 순간에도 방사능이 이라크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몸에 쌓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끝나면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카림 박사는 나를 문까지 배웅해 주면서 "이라크산(産) 야채는 절대로 먹지 마라"고 귀띔해 줬다.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 시작된 96년 이후로 상당수 이라크인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농산물만 먹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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