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 읽기] 어린이는 알까 어른의 마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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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땅'이라는 애틋한 노래가 있다.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울어머니 살아 생전에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으로 시작되는 가수 한돌씨의 노래다. 요즘 신문을 펼치면 온통 땅 얘기, 집 얘기다. 그런데 그 땅에 콩이며 고구마를 심겠다는 소박하고 단정한 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많이 올랐고 어디에 투자자가 몰린다는 어지러운 소식만 가득하다.

물가도 뛰고 집값도 폭등한다는데 올해 체불 임금은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기사가 무릎의 힘을 뺀다. 힘든 사람들에게 더욱 더 힘든 이런 나날은 언제쯤 좋아질까. 어른이 뉴스를 보면서 한숨을 쉰다면, 어린이는 어른의 한숨을 보며 한숨을 쉰다.

바바라 슈크 하젠의 그림책 '힘든 때'(미래M&B)는 삶이 힘겨운 어른을 지켜보는 어린이의 질문을 다룬 책이다. 주인공은 강아지를 사고 싶지만 아빠는 "힘든 때니까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모든 것이 오르기만 하는 '힘든 때'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이렇게 노력해본다. '언젠가 내 풍선도 내가 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가 버린 적이 있었지.'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한낮에 불쑥 퇴근한 아빠가 밖에서 잃어버리고 온 것은 '퍼즐 조각'이 아니라 '일터'였다. '힘들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은 참 힘들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느덧 엄마와 아빠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어루만질 만큼 뭔가 아는 아이가 되어 간다.

그동안 어른들이 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 어린이들의 문제를 터놓고 토론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에 비해 어른들의 현실적 고민은 숨긴 적이 많았다. 어린이는 어른의 마음을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왜 힘든지 이야기해보는 것은 '네가 왜 힘든가?'를 묻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다.

어린이들은 땅값이 왜 오르는지 보다 땅값이 오르면 왜 어른들이 힘들어하는지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평등한 의사소통과 사고의 성숙은 그렇게 시작된다. '힘든 때'는 요즘처럼 팍팍한 시절에 그런 지혜로운 시도를 도와주는 자연스런 매개체가 되는 책이다.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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