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비트] '더 런닝 로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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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조상들이 나무를 탈 때, 우리 조상들은 철학을 논하고 있었어!"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그리스 혈통의 여주인공 아버지가 미국인 사위를 못마땅해 하며 읊조린 대사다.

그리스인의 자부심이 가득한 독백인데, 그럴 만도 하다. 그리스 하면 조건반사처럼 '문명과 철학의 요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요르고스 달라라스는 음악으로 국민을 위로하고 이끌어 온 그리스의 국민가수이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뒤를 이어 그리스음악을 세계화한 스타다. '달라라스의 오늘은 그리스 음악의 내일'이란 평가가 따를 정도다.

1950년에 태어난 달라라스의 아버지는 '렘베티카(rembetika 또는 rembetiko로도 표기함. 20세기 초반 주로 도시 빈민소외계층에서 발생한 음악)'뮤지션이었다. 10대가 되면서 그는 당시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틀스, 롤링 스톤스, 밥 딜런 같은 뮤지션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도 멋지지만 그것을 따라하는 건 흉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음악 렘베티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죠."

69년 동명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전통의 현대화'였다. 이런 그의 업적에 대해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는 '천재'라는 평가를, 미국의 빌보드지는 '찬란하고 완벽하다'는 극찬을 한 바 있다.

2001년도에 발표된 '더 러닝 로즈'앨범은 아테네와 뉴욕을 오가며 만든 역작이다. 음반에는 이국적인 낭만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의 사색적인 목소리가 공존한다.

첫 곡 '매드 어바웃 유'는 원작자 스팅과 함께 그리스 풍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두 사람의 개성있는 목소리와 어우러진 이국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플라잉 카펫'은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투명한 피아노 반주, 쓸쓸한 하모니카가 흘러나오는 발라드로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아름다운 소품이다.

'더 고스츠'에선 그리스 전통현악기이자 렘베티카의 대표적 악기인 부주키 연주가 경쾌하게 흐른다. 하프와 만돌린 연주가 인상적인 '플라워'는 달라라스의 쓸쓸한 목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끝 곡 '아스타 시엠프레(영원히 함께 하자)'는 '체 게바라 만세'로도 널리 알려진 곡으로,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의 섬세한 기타반주가 곁들여졌다.

수록곡에는 그리스 악기들은 물론, 아르메니아의 클라리넷이라 할 수 있는 '두두크(duduk)'를 비롯해, 아랍에서 유럽으로 전래된 류트의 조상 '우드(oud)',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악기 '지터(zither)' 등 다양한 전통악기들이 연주됐다. 전통에서 해법을 찾은 그의 지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교훈이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MBC FM '송기철의 월드뮤직'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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