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 못 잡은 야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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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를 뒷받침하는 한웅진씨(당시 준장)의 층언.
『17일 초저녁이었을 겁니다. 박 소장이 통화를 하면서 <정말 그러기야>라고 하더니 곧 전화를 놓더군요. 누구냐고 했더니 이 중장이랍디다. <같은 동기생인데 설득해 협조를 얻도록 합시다>라고 했더니 <그×× 틀렸어. 야전군쪽 친구들이 체포한다니 내일아침에 올라올거야>라고 합디다. 이때 체포 연행으로 결심을 굳힌 거지요.』
박 소장이 이 중장에 대해 「협조가능성 없음. 체포」로 마음을 정한 반면 이 중장은 17일에 와서 도리어 마음을 굽히지 못하고 흔들렸다. 오전의 강경성명이 오후엔 뒤바뀌고 연설속에서 지지와 회의가 엇갈렸다. 사령부경비를 위한 ×사단의 출동을 명령했다가 곧바로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일처리가 마음의 동요를 실층하고 있었다. 자연히 예하부대들도 정세의 혼미에다 사령관마저 흔들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음날의 체포연행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할까?
그런 현상을 말해주는 임부택씨(당시 소장·×군단장) 의 회고.
『17일 오전으로 기억돼요. 야전군부사령관 윤춘근 소장이 군단장실로 날아왔어요. 그리고 얼마뒤 사령부에서<「매그루더」사령관이 출동을 명령했다>면서 <빨리 출동하라>는 것이었읍니다. 계속 출동확인 전화가 와요. 그때마다 <녜 녜, 곧 출동합니다>면서 시간을 끌었어요. 나도 망설인 것입니다. 그러다 오후엔 출동은 않기로 나 혼자 작정해 예하부대 비상을 해제해 버렸지요. 사령부에 나의 결정을 보고했어요. 별다른 반응이 없어요. 다른 군단장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김웅수 최석 두장군이 몹시 실망을 합디다. 그런데 그날 늦게 육본의 주체 영관급들은 나를 체포하러 사람을 보내고 박 소장측은 격려하러 보냈어요. 그런데 서로 임무가 엇갈리어 정문에서 맞닥뜨려 옥신각신했던 모양이에요. 군단 장병들이 양쪽 모두 들어오지도 못하게 쫒아 버렸지만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읍니다. 』
이 무렵의 일에 대한 이한림 장군의 회고.
『그날 「매그루더」장군은 출동을 명령하지 않았어요. 다만 <현 사태의 원활한 수습을 위해 진압부대의 출동이 필요하지 않느냐>면서 내 의견을 물었죠. 나는 반대했습니다. 「매그루더」의 요청에 따라 병력출동을 지시한 일은 없어요. 장면 총리가 출동명령을 내렸다면 응했을 것이지만…. 「매그루더」가 떠난 직후 윤태일 춘장이 찾아 왔읍디다.
나는 이 자리에서 <원칙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현 상황으로는 지지할 수 없다>고 했어요. 나는 <박소장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라고 일렀읍니다. 나는 야전군사령관이었고 내 결심만 선다면 혁명군진압은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출동」은 곧 「충돌」을 남는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어요.
의논할 상대도 없었죠. 국군통수권자인 장면 총리는 행방을 알 길이 없고…. 총리가 나타나 결단을 내려야할텐데 답답했읍니다. 백방으로 총리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찾을 길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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