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에 끝낸 '6월 드라마'… 동점 프리킥 → 황금골 막판에 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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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나이지리아를 막판 KO 펀치로 쓰러뜨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팀의 극적인 승리를 이렇게 전했다.

드라마는 막판 3분에 이뤄졌다. 그 전의 89분은 악몽이었다. 전반 18분 데이비드 아브오의 빠른 발에 농락당해 선취골을 허용하며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전반 42분에는 신영록이 슛한 공이 골대를 맞은 뒤 골키퍼 뒤통수를 맞고 튕겨 다시 골대를 맞고 나오는 아쉬운 장면도 나왔다. 후반 3분 안태은이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박주영의 킥은 골키퍼 발을 맞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젊은 태극전사들은 끝까지 투혼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FC 서울의 콤비 백지훈과 박주영이 대역전의 물꼬를 텄다. 후반 44분 백지훈이 상대 진영 중앙을 과감하게 돌파하다 파울을 얻어냈다.

박성화 감독과 '프리킥 내기'를 하면서 발끝을 가다듬어온 박주영이 드디어 멋진 한 방을 터뜨렸다. 1-1. 하지만 여기서 경기가 끝나면 이미 1패를 안은 한국으로선 어쨌거나 16강행이 물 건너갈 상황이었다.

3분 뒤인 후반 47분. 박주영이 상대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흔들며 날린 중거리슛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골문 왼쪽으로 튕겨 나왔다. 그 순간 달려든 백지훈의 왼발이 번쩍하며 드라마는 완성됐다.

백지훈은 "처음엔 멍한 느낌이었다. 골 세리머니를 준비한 게 있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그냥 뛰어다니기만 했다"며 감격해 했다. 날카로운 패스와 슈팅력, 꽃미남 소리를 들을 만큼 빼어난 외모의 백지훈이 또 한 명의 스타로 뜨는 순간이었다.

FIFA 홈페이지는 한국의 승리를 "박주영의 센세이셔널한 프리킥과 3분 뒤 이어진 그림 같은 슛"으로 요약했다. 그러면서 박주영을 '한국의 연인(Korean darling Park)' 등으로 표현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한국 선수들은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올렸고,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벌렁 드러누웠다. 샘손 샤샤 나이지리아 감독은 "마지막 5분에 집중력을 잃었다. 페널티지역 근처에서 파울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하며 씁쓸해 했다.

이날 승리는 3년 전 2002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과 닮은꼴이었다. 실점과 동점골 시간도 비슷했고,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안정환.박주영)가 골을 넣은 것도 같은 상황이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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