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도 찬성도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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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월로 기억되는데 두 장군이 종로에 있는 관해관이란 중국집에서 만났읍니다. 이자리에서 박병권장군이 군부거사의 뜻을 밝히고 함께 손잡자고 했지요. 박정희장군은 이미 그때준비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호응은 안했지요.
뜻에는 찬동하지만 생각해 본일도 없고 조직도없어 무어라 말할수 없다는 거절이었읍니다. 우리는 두 장군의 이런대화를 확실한 정보로서 입수했읍니다.(박병권장군은 <나는이범석국방장관의 부관으로 유대가 깊지만 족청은 아니다. 박소장과 관해관에서 만나 밀담한 일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61년초 ×군사령부에 있다 장중장이 총장이된후 서울로 전임되어 요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군사령부에 있을때인데 사령관실에서 부르더군요. 갔더니 박부사령관도 함께 있더군요. <요즘 군의 동향은 어떤가>고 묻는데 맞대놓고<두장군께서 거사준비를 한다는 정보도 있었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얼핏 둘러될 말이 없어<공군의 쿠데타세까지 나돌만큼 복잡합니다>그랬지요. 두분은 심각한 얼굴로 듣고 있더군요. 그 며칠뒤 박소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잡디다.
나갔더니 석중령도 함께였습니다. 사령부 근교의 농촌인 ××쪽으로 차를 몰면서 박소장은 버마식 군사혁명을 우리는 해야한다고 했섭니다. 버마식이 무어냐니까 군이 혁명을 해서 질서를 바로잡은뒤 민간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했어요. 나는 그때 박소장의 계획은 장사령관도 함께라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뒤 장사령관이 총장이 되면서 총장의 입장은 달라졌으리라고 판단했지요. 4월부터 박소장의 움직임이 일선요원들에게 노출되어 보고되기 시작했읍니다.
장총장에게 수시로 조사진행상황을 보고했습니다. 5·16 직전이지요. 방첩대 본부에서 이태희검찰총장, 이철희방첩대장, 이희영서울지구 방첩대장 그리고 또 한사람이 있었어요. 이자리에서 그동안의 정보를 종합했지요. 결론은 군과 검찰이 동시에 관련자를 검거하자는 거 였습니다. 군수사기관은 장총장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가 5월15일밤에 출동시간을 알게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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