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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음식점 이름, 웃겨야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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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음식점 이름, 웃겨야 성공한다.”

 창업인구 500만 시대다. 골목 깊숙이까지 크고 작은 식당·카페가 들어섰다. 인터넷에도 넘치는 게 음식점 정보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꽃’이 될 수 없는 현실. 상호명은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브랜드 네이밍·마케팅 전문회사인 플러스엑스의 신명섭 이사는 “요즘 브랜드 작명 트렌드는 단순 명확하거나 위트(웃음)가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김밥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한다는 콘셉트를 직설적으로 상호명에 반영한 ‘바르다 김선생’과 누구나 알고 있는 의미를 한 번 비틀어 웃음을 선사한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이 성공한 대표적인 예다. 신 이사는 “그중에서도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름은 젊은 층의 주목도를 높이고 기억 또한 오래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대박 나는 가게 이름』을 펴낸 토털 브랜딩 회사 메타브랜딩의 김자성 상무는 웃음을 유발하는 상호명의 중요한 요소로 ‘호기심’과 ‘의외성’을 들었다. 알 듯 말 듯 묘하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이름은 단박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의외의 진실을 파악했을 때 비로소 웃음이 터지면 성공이라는 얘기다.

 김 상무는 ‘my x-wife’s secret recipe’ ‘nice to meat you’ ‘babidabida’ ‘철수가 영희 꼬신 샤랄라 다방’ 등의 문장형 상호명을 첫 번째 예로 들었다. “명사가 아니라 문장으로 된 이름이라는 것부터 재밌다. 또 전 부인의 비밀 조리법이라는 표현이 기대와 호기심을 유도한다. ‘nice to meat you’는 서양식 레스토랑을 연상하고 들어갔지만 항정살·삽겹살 등을 파는 고깃집이고, ‘babidabida’는 한식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밥이 답이다’는 문장을 영문으로 표현한 것이니 의미를 알고 나면 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철수와 영희라는 친근한 이름을 쓴 복고풍 카페도 왠지 가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대조기법으로 재미를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 상반된 이미지나 키워드를 결합함으로써 식당의 콘셉트를 강렬하고 재밌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김 상무는 “‘에스키모 하와이’는 빙수와 커피 두 가지를 파는 카페다. 한 집에서 북극과 열대를 다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족과의 동침’은 척 봐도 족발집인 건 알지만 영화 ‘적과의 동침’을 패러디한 능청스러움이 웃음을 유발시킨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호기심과 의외성일까.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는 정보 과잉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뚜껑을 안 열어봐도 내용물을 알 것 같으면 그 상자는 패스시켜버린다. 왜? 뒤에 기다리고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상자라면 흥미가 유발되고, 뚜껑을 연 후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 허를 찌르는 의외의 결과를 만나면 기억력 또한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만나봤다. 기자가 ‘맛있는 월요일’을 위해 음식점을 뒤지다 올해 문을 연 집들 중 ‘도대체 무엇을 파는 집인지 몰라서’ 호기심을 유발시킨 집들이다.

‘드슈’ 이주연 이사. 프랑스어로 ‘슈(CHOU)’는 양배추다. 전치사 ‘드(DE)’를 붙여 발음상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프랑스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양배추를 넣은 안주 ‘양배추 제육볶음’도 준비했다.

① 드슈 :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드슈의 외부 간판엔 ‘DE CHOU’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어 전치사 DE가 쓰인 걸 보니 프렌치 레스토랑인가 싶었다. 실제로 슈(CHOU)는 프랑스어로 양배추라는 뜻이다.

 그런데 층계를 내려가 만나본 이 집의 정체는 ‘한국 고전 술집’이다. 문배주·이강주·진도홍주 등의 한국 전통주를 판다. 황희 정승 차례상에 오른다는 호산춘(청주)과 고전 『춘향전』에 등장한다는 감홍로(소주)도 이곳의 자랑이다.

 바의 콘셉트는 공동대표 4명 중 한 명인 이주연 이사의 아이디어다. 잡지사 기자였던 이씨는 전국의 전통주를 취재하면서 이렇게 좋은 술을 젊은이들이 모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가장 핫하다는 가로수길에 전통주 전문 바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내는 서양식 모던 바 분위기다. ‘어만두 샌드위치’ ‘너비아니 춘권 튀김’ ‘새우탕면’ 등 안주도 한식을 이용해 ‘한입 크기’로 깔끔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어 드슈(DE CHOU)는 가로수길에 맞는 세련된 느낌의 글자면서 한국 발음 그대로는 ‘많이 드슈’가 생각나잖아요. 사랑방 선비들의 좋은 벗이 됐던 전통주의 정성을 마음껏 드시고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성북동 디너쑈’ 이한수 대표는 모든 메뉴를 직접 만든다. 단호박·홍합·새우·오징어·주꾸미에 모차렐라 치즈와 마늘종을 얹어 오븐에 구운 ‘해물치즈단호박 떡볶이’.

② 성북동 디너쑈 : “접시에 담긴 음식, 실내 인테리어, 성실한 서비스…. 결국 고객은 이것을 다 눈으로 보고, 우리는 또 보여주니까 모든 게 맛있고 즐거운 쇼(show)죠.”

 의류업체에 다니던 이한수 대표가 광고업체에 다니는 한 친구와 합심해 지난 5월 문을 연 ‘성북동 디너쑈’는 이름처럼 볼 것이 많은 재밌는 공간이다. 일단 집 속에 또 집이 있다. 1961년에 지어졌다는 개 고깃집 ‘평옥’을 다듬어 만든 본채는 따뜻한 분위기의 한옥이다. 안에는 평옥에서 떼어낸 철문과 문틀로 만든 테이블, 평상 같은 마루가 있다. 또 시선이 닿는 구석마다 작은 피규어들이 놓여 있다. 원래 마당이 있던 자리는 유리로 벽을 만들고 컨테이너 박스처럼 꾸민 주방을 들였다.

 메뉴도 다양하다. 피자·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과 해물치즈떡볶이 등 한식이 섞여 있다. 이 대표는 “어른·아이 다 좋아하는 익숙한 음식들을 메뉴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ㅆ’을 연상시키는 입구도 독특하다.

 점심시간부터 영업을 하지만 굳이 ‘디너쑈’라고 표현한 건 ‘세련된 B급 문화’를 만들고 싶은 두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예전부터 디너(저녁식사) 때는 점심 때보다 더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잖아요. 그만큼 세련된 공간이라는 의미죠. ‘쇼’를 촌티 나는 ‘쑈’라고 쓴 건 가족이 세대를 초월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라는 의미죠.”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김덕영 대표에게 와인바는 1인 출판사이자 작업실이 다. 쇠고기 스테이크를 잘게 잘라 신선한 채소와 곁들인 ‘스테이크 샐러드’.

③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 “김 PD가 누구죠?” “그래서 김 PD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서촌 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와인 바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선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다. ‘김PD’라는 단어 하나가 음식을 팔고 사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2000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회사 ‘다큐 스토리’를 운영하며 ‘인간극장’ ‘시사투나잇’ ‘수요기획’ 등의 작업을 했던 김덕영 PD는 지난해 10월 모든 걸 훌훌 털고 홀로 서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소믈리에 임수영 대표와 함께 와인 바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서다.

 ‘스토리’ 연작으로 바 이름을 짓는데 임 대표가 “김 PD의 정체성을 살리자”고 부추겼다. 이곳을 ‘창조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김 PD의 계획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PD는 이 공간에서 하는 일이 많다. 북 클럽, 작은 콘서트 등을 열고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엔 각자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와서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 ‘장롱 와인 블라인드 콘테스트’도 연다.

 김 PD는 세스 고딘의 책 『이카루스 이야기』를 들어 자신의 목표를 설명했다. “책에 ‘연결경제’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결국 사람들 간 감정의 교감이 미래 산업의 경쟁력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모여 창조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겠죠.”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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