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화 아직은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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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음은 서독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등이 전대통령의 새통일방안제의를 계기로 다룬 한국통일문제에관한 해설기사 (1월29일자)이다.
【본-김동수특파원】
10년쯤을 주기로하여 이따금 남북한간의 정책에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는것같은 외형상의 현상이 나타나곤한다. 그리한 옴직임으로서 현재 한국의 전두환대통령이 「민족통일협의회의」를 골자로하는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바로 12개월전 그는 남북한간의 신뢰성을 위해 서울이나 평양, 또는 어떤 장소에서라도 남북한간의 수뇌회담을 갖자고 제의한바있다.
북한쪽도 제안이 없은 것은 아니다. 김일성은 1980년 가을 노동당대회에서 10개항의「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내놓았다.
그리고나서 10개월뒤 평양정권은 「3개정당과 20개단체」를 내세워「통일준비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남북한사람은물론, 해의교포들이 서을이나 평야또는 판문점에서 만나자는것이었다.
이때마다 경제협력·남북이산가족을 위한 인도적문제등이 언급되곤한다.
그러나 외형상 비슷해보이는 제안의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한국정부는모든 접촉을 정부끼리 하자는 주장이다. 한국정부는 분단상태에서의 관계정상화를바라고 있다. 그런 전제에서기본관계조약체결, 유엔동시가입, 상주대표부교환, 이산가족재회, 사회제도차이에대한 상호간의 존중을 제안하고 있다.
북한의 제안은 이와 대조적이다.
평양은 한국정부와 접촉하려하지 않고 그들이 한국과 접촉하는 길은『아래로부터』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주한미군을 철수해야한다는 것이 그들의첫번째 희맘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때문에 현시점에서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0년전 남북한적십자대표간의 기대에찼던 회담이 북한에 의해중단된 이래 여건들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는 미국·중공간의 접근에 따라한반도에서 대결의 완화가 기대해봄직 했었다.
현재로서는 한국만이 그렬 준비가 돼있다. 전대통령은 7O년대에 서독이 추진했던 동방점책과 방향이 비슷한 대북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이나 동독이 그랬던 것처림 현상인정을 바탕으로한 대한국정책을 추진할 생각이 없는것이 분명하다.
북한정권은 「스탈린」주의적이고 모택동적이자 개인숭배의 조잡한 방식에 바탕을둔 자급자족적인 요소들로 응집된 주체사상울고집하고 있는데 이사상은한국의 혁명을 책무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이 5Q여개국이상에서 동시에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협정을 체결하는 것과 같은 상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한반도정책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볼수밖에 없다. 서을의 경우 국내안정을 전재로 한다면 훨씬 낙관적이다. 한국의 경제사정은 북한과 비교가 되지 않을정도로 나은 형편이다. 평양의 경우 그 지도층의 생각으로는 하챦은 것이 물론이지만 파산지켱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지난해 「레이건」미국행정부와의 관계를 호전시켰고 게다가 86년의 아시안게임과 88년올림픽을 유치하는 스포츠정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아니라 지난해 동남아시아의 ASEAN에 발판을 굳혔올뿐더러 공산국가들과 우편·스포츠교류등 접촉의 길을 다지고 있다. 아프리카지역과 일부 아시아국가등 제3세계에 대해서는 개발윈조까지 제공하고 있다.
제3세계에 대해 군사훈련원조밖에 제공하지 못하는북괴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서 놀랄만하게 호의적인대접을 받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하챦은 성과다. 그러한 예로서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남북한 기독교신자들이 가졌던「통일을위한 대회」같은발상이다.
한국측 참석자들은 반정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던데 반해 북한측 참석자들은 평양노선에 충실한 공산당원들이었다.
한국동란이래 한국인들의반공의식은 확고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북한지도부의 제1새대가 물러난후 좀더 이성적으로 말이 통하는 테크너크래트들이 들어서 대화의 전환점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것이 현실적인 전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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