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브와르의 「이별의 의식」유럽 독서계서 큰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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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0년4월16일 타계한「장·폴·사르트르」와 구원의 사람을 간직한 프랑스의 대표적 여류「시본·드·보브와르」여사가 최근「사르트르」말기 10년간의 생활을 담은 전기『이별의 의식』(La ceremonie deds adieux)을 출판, 유럽 독서계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간추린 내용을 서독시사추간지「슈피겔」에서 전재한다.
『이별의 의식』은 특히 르· 프왱 지의 표현처럼「사르트르」말년의 투병 생활이「보브와르」부인의 사실적인 표현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다른 전기류와 다른 것이다.
『「사르트르」는 어느 햇볕 화사한 일요일하오 노변 카페에서 수프를 들다가 그릇을 엎질러 바지와 구두를 더럽혔다.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동안 수없이 당해 온 나에겐 별로 당황할 것도 없다….』「이별의 의식」에선 이처럼 사소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끊일 줄 모르게 나타난다.
『「보브와르」! 내가 시력을 되찾을 순 없을까?』언젠가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를 듣고 밤새 운 일도 「보브와르」여사는 회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그가 육체와 함께 정신력마저 극도로 나약해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읽어주는「요아킴·페스트」의 저서「히틀러」를 들으면서 아무런 감동이나 감정을 나타내지 않을 만큼 그의 정신력은 거의 제로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병상의 그를 돌보았던 여인들은 나 이외에도 무려 다섯 사람이나 손꼽힌다. 양녀인「알를레트」를 비롯해 「완다」「미셸」「릴리안」「실비」등 다섯 여인이「사르트르」의 말년을 동반해 준 이름들이다.
그리고 휠체어에 실린「사르트르」가 로데즈에서 예루살렘으로, 폼페이로부터 리스본까지 마음대로 여행하는데에 이들의 도움이 컸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르트르」의 저택이나 병상엔 이들 말고도 「프랑스와즈·사강」이나 서독의 여성해방주의자「알리스·슈바르처」가 종종 찾아왔으며 때로는 문학소녀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이별의 의식』은 이처럼「사르트르」의 투병생활을 소개하는 이외에 항간에 나도는 몇 가지 이야기를 수정하고 있어 관심은 더욱 높다.
우선 중요한 것은「사르트르」의 유언이 항간의 소문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음 번엔 우리 함께 술이나 마시지』란 말을 어느 남자친구에게 유언으로 남겼다는 소문과는 달리 그는「보브와르」부인의 손을 꼭잡고『나 정녕코 당신을 사랑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부인은 술회한다.
그리고「보브와르」부인은 그의 임종을 보다 비극적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장례식엔 5만여 명의 조객들이 몰려 몽마르트의 공동묘지까지 기나긴 행렬을 이루었다. 그러나 생전의 반려자인 나, 「보브와르」는 몽파르나스의 어느 까페에 앉아 그 기나긴 행렬을 지켜보며 회상에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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