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때보다 더 기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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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맙습니다. 각계 성원에 감사합니다. 영영 다시는 우리 집을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은행 빚 12만원을 제때에 넣지 못해 은행측에 의해 집을 강제경매 당한 뒤 혹한의 거리로 쫓겨났던 한옥진씨(37·여·서울흑석1동200의8 삼화연립102호)네 식구가 집을 잃은 지 10일만에 각계의 온정으로 보금자리를 되찾았다.
내 집을 잃은 안타까움이 중앙일보(19일자 11면) 에 보도된 직후 한씨 가족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회의 여론이 일자 국민은행측은 20일 한씨 집을 낙찰자로부터 다시 사들여 되돌려줬다.
20일 낮12시40분쯤 국민은행본점 최명규 이사(55) 등 본점임원을 비롯한 10명의 행원들은 한씨 가족이 가재도구를 쌓아놓은 서울 흑석동 현장을 찾았다.
『저희들이 너무 법에 집착해 융통성을 잃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짐은 저희들 손으로 나르지요.』
최 이사가 먼저 가재도구를 나르기 시작했다.
법 이전에 상식이 눈을 뜨고 혹한을 녹이는 뜨거운 인정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열흘만에 되찾은 집안으로 발길을 들여놓는 한씨 가족들은 처음 집을 마련할 때보다 더 기쁘다며 들뜬 표정들이었다.
『이제 네 식구가 발을 뻗고 편히 잠잘 수 있게 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있는 남편에게는 그 동안의 집 사정을 얘기도 못했었는데 모든 사정을 얘기하고 이 기쁜 소식도 함께 전해야겠습니다.』
때마침 한씨 이웃 이유남씨(76·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왔던 동네주민30여명이 몰려들었다.
『진모(진모)엄마 잘 됐수. 우리도 발을 뻗고 못 잤는데….중동에 있는 진모 아빠도 얼마나 기뻐하겠어요.』어떤 이웃은 은행직원들과 함께 짐을 날라다주었고 연탄불씨를 지펴주고 집안청소를 거들어주기도했다.
국민은은 노량진지점 직원들은 이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경매낙찰자 신모씨(42·여)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은행이 집을 되사들이는 방법의 환매절차를 밟았다.
은행측은 이미 신씨로부터 받은 낙찰가격 7백만원과 경락비용 1백91만원을 되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경락비용은 은행에서 따로 계정 된 예산이 없어 임원·간부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성금 형식으로 모았다.
『법에 대한 무지로 잃었던 집을 되찾았지만 떳떳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처음엔 은행이 너무 가혹하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단1원이라도 남의 돈은 갚아야지요.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직위해제 된 두 어른도 빨리 제자리에 회복됐으면 좋겠고요….』
한씨는 다시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며 둘러 앉아있는 이웃들에게 연방 고개를 숙였다.
추위에서 떨다 모처럼 따뜻한 아랫목에 몰려 앉은 한씨 가족들에겐 사회의 온정이 한결 훈훈하게 덮여있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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