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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사면서 문화산책까지 … 갤러리 같은 매장 꾸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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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신발 브랜드 `캠퍼`의 최고경영자 미겔 플룩사는 “혁신적인 기능과 더불어 일상의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는 디자인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산업화로 모든 것이 비슷해진 요즘, 사람들은 과거보다 지겨움을 훨씬 자주 느끼게 됐다.”

스페인의 캐주얼 신발 브랜드 ‘캠퍼’의 최고경영자(CEO) 미겔 플룩사(40)는 “요즘 사람들은 꼭 그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소비를 한다”며 독창적인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론칭 10주년을 기념해 최근 방한한 플룩사를 서울 신사동 매장에서 만났다.

‘카사 캠퍼’ 객실에는 자연에 온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해먹(그물침대)이 설치돼 있다.

1877년 스페인 마요르카 지방에서 시작된 캠퍼는 4대째 내려오는 패밀리 비즈니스 기업으로 전 세계 70개국에 진출해 있다. 브랜드명 캠퍼는 스페인어로 ‘농부’라는 뜻이다. 마요르카 지방의 농부들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가죽 신발을 만든 게 브랜드의 시작이다. 국내서도 2012년 제 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최고작품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개량 한복 차림에 캠퍼를 신고 나와 화제가 됐다. 예측불허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캠퍼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주요 원동력이다.

미겔 플룩사는 플룩사 가문의 4대손으로 대학에서 경영과 금융을 전공했다. 미국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 등에서 일하다 2003년부터 가업에 참여해 2009년 CEO에 취임했다.

-오래된 가업을 이끌려면 어떤 경영철학이 필요할까.

“의류 등으로 눈을 돌리기보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고조할아버지가 처음 농부의 신발을 보고 ‘자연에 가까운 신발을 만들겠다’ 꿈꿨던 것처럼 나의 목표도 여전히 ‘더 좋은 신발’이다. 우리가 집착하는 디자인 공간은 그 신발을 신고 도착해서 만나는 독창적이고 편안한 쉼터 같은 곳이다.”

-경쟁사가 있다면.

“추구하는 컨셉트나 철학 면에서 본다면 애플은 좋은 경쟁자다. 창의적이면서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참고하기 좋은 회사다. 혁신적인 기능을 우선시하면서도 일상의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는 디자인 가구브랜드 ‘비트라’와 ‘무지’, 시계 브랜드 ‘스와치’ 등도 모두 우리의 경쟁자다.”

벽면과 진열대에 개성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진열돼 있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매장.

-창조적인 디자인 마인드를 가지려면.

“용감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내가 속한 시장 밖 다른 분야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감을 주는 아이템은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캠퍼의 글로벌 마케팅 전략은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공간 디자인을 통한 캠퍼의 마케팅 전략은 호텔과 식당 비즈니스에까지 확대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호텔 ‘카사 캠퍼’와 그 옆에 있는 ‘도스 파릴로스’라는 식당이다. 카사 캠퍼는 객실이 50여 개인 부티크 호텔이다. ‘젓가락’이라는 의미의 도스 파릴로스에선 퓨전 아시아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좁은 골목에 위치한 카사 캠퍼는 ‘친환경’과 ‘디자인’을 큰 축으로 운영된다. 우선 태양열 지붕으로 온수와 전기를 공급한다. 정원이 없는 도시형 호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객실 창문 앞에 선반형 벽을 설치하고 커다란 화분을 쌓아 수직정원을 만들었다. 식물에 주는 물은 여행객들이 욕실에서 사용한 물을 정수해서 쓴다. 불필요한 포장을 없앤 비누와 샴푸를 비치하고,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하고 있다. 또 손님이 즐거운 기분으로 직접 분리수거에 참여하도록 재밌는 그림과 글씨를 적은 쓰레기통을 준비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침실과 휴게실을 분리시켜 놓은 것도 카사 캠퍼만의 특징이다. 플룩사는 “2004년 호텔을 시작하면서 일반 호텔에서 느낀 불만들을 듣고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일찍 자고 싶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싶은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다. 도심 속 호텔이지만 휴게실에 해먹을 두어 캠핑이라도 온 듯 자연 속 편안함을 느끼도록 한 것도 새로운 발상이다. 또한 여행객들이 좀 더 잘 도시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주변 지도를 재밌게 제작해 나눠주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캠퍼와 협업한 패션 디자이너 최지형씨.

-신발회사가 왜 호텔·식당 등의 공간 디자인에 집착하나.

“브랜드의 다양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발은 걷기 위한 도구다. 여행객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관광을 즐긴다. ‘걷기’와 ‘신발’의 중요성을 잘 아는 도시 여행자들에게 건축·인테리어·서비스 등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노하우와 철학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호텔 운영의 컨셉트는.

“편안함, 유니크한 디자인, 친환경 등 브랜드의 가치를 공유하도록 했다. 기존 호텔을 이용할 때 싫었던 점들도 개선했다. 예를 들어 미니바가 객실에 있으면 소음이 발생한다. 때문에 전 객실에서 미니바를 없애고 1층 로비에 캐주얼한 바를 두고 언제든 공짜로 음료와 간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캠퍼는 패션·회화·섬유 등 장르를 불문하고 전 세계 신진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투게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난 8월엔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패션 디자이너 최지형과 함께 협업한 신발 ‘캠퍼×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를 선보이는 행사를 열었다.

-‘투게더 프로젝트’란.

“신진 디자이너들과 함께 개성 있는 디자인의 신발을 만들거나 전 세계 유명 도시에 그들의 디자인 감각을 반영한 캠퍼 매장을 세우는 일이다. ‘스페셜 에디션’을 선호하는 젊은 층과 패션 피플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매장 자체가 도시의 랜드 마크로 주목받게 하는 효과가 있다.”

-주요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는 매장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과 위트 있는 디자인 그래픽을 은유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갤러리 같은 공간이다. 이곳에 들른 고객은 신발을 사면서 동시에 문화 산책까지 할 수 있다. 2007년 투게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유럽에 초점을 맞췄는데 요즘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때문에 아시아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선 디자이너 그룹 넨도를 비롯해 도쿠진 요시오카, 반 시게루 등과 투게더 매장과 신발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는 가로수길에 투게더 매장이 있다.”

-패션 외 여러 장르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이유.

“전혀 다른 세계를 배울 수 있다. 캠퍼 본사에도 12명의 디자이너가 있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생각해낼 수는 없다. 장르가 다른 디자이너들과 작업하면서 우리가 몰랐고 또 미처 보지 못한 지점을 알게 된다. 그 신선한 발상을 우리의 신발 노하우와 결합하는 건 아주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이다. 신진 디자이너들을 선호하는 건 그들 또한 기성시대의 지루함을 싫어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움을 좇기 때문이다.”

-한국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어떤 효과를 냈나.

“캠퍼는 유럽스타일이 기본이라 컬러풀한 색이 많다. 밀라노·뉴욕·홍콩 등에서 주목하고 있는 최지형 디자이너의 브랜드 ‘쟈니 헤잇 재즈’는 도시적인 감각의 모노톤 컬러가 강점이다. 우리의 가죽 패브릭 노하우를 이용해 최지형 디자이너가 검정, 회색, 흰색, 은색 등 멋진 모노톤 컬러를 (조각보처럼) 신발에 입혀줬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이 제품은 한국뿐 아니라 홍콩·유럽 매장에서 동시에 판매되고 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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