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행사의 간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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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주관의 각종행사가 간소화된다. 그 동안 형식적이고 낭비가 많다는 국민들의 비판에 정부가 귀를 기울인 것 같다.
「간소한 정부」를 지향한다는 목표아래 그 동안 정부는 기구를 축소하고 인원도 감축했었다. 이번 조처도 허장성세보다는 내실을 다지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우선 정부의 씀씀이를 줄여 궁극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의 정부행사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보다는 마지못한 참여, 때로는 강제동원하는 폐단까지 없지 않았다. 별 관계도 없는 공무원들이나 심지어 학생들까지 동원돼 기념식장의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해야했다.
또한 이런 행사에 드는 비용이나 기념식이 끝난 뒤의 기념품 제작, 호화파티에 드는 경비등을 생각하면 정부가 누누이 호소하는 허례허식의 추방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인적·시간적·물질적 낭비를 줄이기 위해 당국은 단안을 내린 것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정부행사 간소화 방안은 대충 네가지로 요약된다.
국경일 행사를 제외한 각종 기념일행사를 축소, 폐지하거나 격년제, 3주년, 10주년으로 개최하는 방안이 그 첫째다. 또한 대형행사장의 사용을 억제하고 요란한 선전을 중지하며, 정부주관 행사를 차츰 산하단체나 민간단체로 넘기는 방안등이 검토되고 있다.
모두 적절한 방안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그 기념일이 왜 생겼는지 근본취지를 상기하는 일이다. 대개 기념일의 지정은 국경일을 제외하곤 창설일, 중요성을 일깨우자는 날, 축하하는 날, 강조주간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그 날을 기념식위주로 보내고 이튿날은 언제 그런 날이 있었냐는 듯 잊어버리는 것은 기념일 제정의 참뜻을 저버리는 일이다.
따라서 기념식은 관계인사들만이 조촐하게 모여 거행하되 왜 그 행사가 필요한지, 지금까지 그날이 있어야할만큼 관련인사들의 노력이 기울여졌는지를 반성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는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기념일행사를 산하단체나 민간단체가 여는 방안도 적극 추진돼야할 것이다. 문교부가 주관하는 한글날행사에 점차 한글학회의 참여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다. 수십가지에 이르는 다른 기념일도 점차 관련협회등에서 주관하게 되면 정부예산을 줄이는 동시에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혹시 기념일 행사를 간소화하면 그나마 국민들의 인식이 희박해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행사로 오히려 국민의 빈축만을 샀던 과거의「행사치레」를 생각하면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조그만 행사가 국민의 관심을 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의 하나는 효율적인 정부를 이룩하고 한푼의 예산이라도 절감하는 일이다. 공직자들이 며칠씩 기념식 준비에 우왕좌왕하고 쓸데없는 곳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풍조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아울러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그와 같은 노력은 사회전반에도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요즘 TV방송이 우주중계를 남발하는 경우나, 턱도 없이 화려한 의상, 호화주택, 사치스러운 가구들이 등장하는 것은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은 무엇 때문에 신정아침에 우주중계로 비치는 일본동경의 거리를 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검소한 정부」의 실현은 각계각층의 참여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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