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부인 둔 외국인 CEO들] 보잉코리아 오벌린 사장 '한국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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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 윌리엄 오벌린 보잉코리아 사장이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부인 이정신씨가 골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다국적 기업에서 한국 지사장이란 보통 아태 지역 총괄 사장으로 승진하는 징검다리다. 하지만 한국에 매료돼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한국에 뼈를 묻는 터줏대감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잉코리아의 윌리엄 오벌린(62)사장과 그의 아내 이정신씨(42). 그들의 대화는 독특하다. 서로 다른 말을 쓴다. 오벌린 사장은 영어로, 부인 이씨는 한국어로 얘기한다. 그래도 통한다.

오벌린 사장은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는 못한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결심하면 번번이 미국으로 돌아가게 돼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려 하면 한국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징크스까지 생겼다"고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오벌린 사장은 1988~91년 영업이사로, 92~95년 아.태 우주통신그룹 담당 이사로 한국에서 일했다. 다시 97년 국방.우주 담당 임원으로 한국에 들어온 뒤 2000년에 한국 지사장이 됐다. 그의 경영 방식은 한국인 최고경영자(CEO)보다 더 한국적이다. 직원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는 것부터가 그렇다. 보잉코리아 직원들에 따르면 상가에서 조문을 하고는 주저앉아 수다를 떠는 품이 영락없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오벌린 사장은 주한 외국 기업인 사이에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로 알려져 있다. 2003년부터 2년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도 맡았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엉뚱했다. 그는 "회사 측의 실수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시절 동남아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오벌린 사장의 경력을 인사담당자가 '동북아'로 헷갈려 한국 근무 발령을 냈던 것이다. 그는 "실수로 한국과 인연이 시작됐지만 이제는 뭔가 운명같은 것을 느낀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오벌린 사장의 '한국 사랑'은 두번째 한국 근무기간이었던 93년 아내 이씨를 만나면서 더욱 깊어졌다. 직장 동료가 당시 캐나다은행 서울 사무소에 근무하던 이씨를 소개해줬다. 이듬해 이씨가 싱가포르 지점으로 직장을 옮기자 두 사람은 주말마다 비행기로 서울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애정을 키웠다. 결국 97년 결혼해 2000년에 딸 마리를 얻었다.

집에서 먹는 식단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한국식이다. 그중에서 '아내가 만들어주는' 수제비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마늘 냄새가 난다고 외국인 동료들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배짱 좋은 한국인의 그것이었다. "그거야 우리 문화 이해 못하는 외국인들 문제죠."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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