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요람 된 유성연수원 계룡산 오르며 심신 단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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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4일 오전 9시30분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앞에서 버스가 떠났다. 삼성화재배 16강전에 맞춰 국가대표팀 30여 명이 시합장인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대표팀은 오후 1시부터 동학사에서 갑사까지 계룡산을 등산한 다음 저녁을 맞았다. 대표팀은 시합이 끝나는 17일까지 연수원에 머무를 예정이다.

 연수원은 기사들이 공부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왜 그럴까. 연수원은 계룡산 동쪽 끝 도덕봉(道德峰·534m)을 뒷산으로 삼고 있다. 도덕봉은 한국의 명당으로 알려진 전남 구례군 사성암(四聖庵)을 안고 있는 오산(鰲山·542m)과 같은 물상(物象·이미지)이다. 하지만 세찬 기운의 사성암과는 달리 연수원은 사람을 격려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삼성화재배는 1998년 제3회 대회부터 연수원에서 본선을 치렀다. 박덕수(53·당시 삼성화재 홍보팀 과장)씨는 “처음엔 기사들이 불만을 많이 터뜨렸다”며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온 다음 다시 2~3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외국 기사들의 부담은 이해할 만하다”고 말했다. 호텔에 비해 부대시설도 소박했고 식사도 시간에 맞춰 제한된 정식(定食)만을 해야 했다. 아침은 7시~8시30분에 마쳐야 한다. 자유로운 생활에 젖은 기사들에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유성연수원에서 대국하고 싶다”고 하는 중국의 입단자들이 최근 늘어날 정도다. 삼성화재배 본선에 오르고 싶다는 희망의 표시만은 아니다. 선배들로부터 연수원의 쾌적함을 들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호텔에서 열리는 대회에 비해 숙소는 높아야 3층이고 정원은 넓어 여유가 있다. 온천 사우나와 수영장이 있으며, 축구장까지 갖춰 한·중 기사들은 시합 중간 쉬는 날엔 축구시합도 하곤 한다.

 연수원은 그간 말 그대로 기사들의 연수 장소로 많이 활용됐다. 대회를 처음 치른 지 17년이 지난 요즘에는 한·중·일 기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둑대회의 요람’이 됐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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