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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정성과 양심으로 손님 맞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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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과 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 때문에 재래시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하지만 시장에도 눈길을 끄는 명품 가게가 많다. 이들 가게는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천안의 대표 시장인 남산중앙시장에서 오랫동안 고객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은 명품 가게들을 소개한다.

500원의 행복 못난이 찹쌀꽈배기

단돈 500원에 맛볼 수 있는 꽈배기는 시장에 진입한 지 3년째지만 남산중앙시장의 사장 명물이 됐다. ‘못난이 찹쌀꽈배기’ 사장 김대영(55)씨는 패션 회사에서 일하며 이탈리아에 수시로 출장을 다녔다. 그곳에서 추러스를 즐겨 먹었는데 마침 자주 가던 가게 주인이 추러스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그는 국내에 돌아와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주유소에서 3~4개월가량 일하던 중 문득 추러스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우리나라 고유 간식인 꽈배기를 사업 아이템으로 떠올리면서 시장에 자리를 트게 됐다.

시장 진입 후 꽈배기는 불티나게 팔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백화점을 관리했던 경력이 있었던 김씨는 백화점 못지않은 서비스로 승부했다.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해 직원 유니폼도 깔끔하게 통일했다. 꽈배기를 만드는 직원은 모두 위생 마스크를 쓰게 하고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반죽통 위에 아크릴판을 놨다. 콜레스테롤과 트랜스지방이 없는 카놀라유 기름을 사용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꽈배기가 탄생했다.

꽈배기를 먹기 위해 일부러 남산중앙시장을 찾는 손님도 엄청나다. 그만큼 꽈배기는 시장의 명물로 자리매김하며 남산중앙시장은 천안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 장소로 떠올랐다.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시장이 활성화되면 마트 못지않게 더 좋은 상품을 판매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며 “시장 상인들의 모범적인 사례가 돼 재래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010-3959-2955

60년 전통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전통의 맛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1대 사장인 할머니와 2대 사장인 어머니를 거쳐 지금의 사장 신태호(61)씨가 40여 년 전부터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1대 사장인 신씨의 할머니 김선복씨는 평안남도 개천군 출신이다. 김씨는 한국전쟁 때 이남으로 피란을 왔는데 평소 고향에서 즐겨 먹었던 냉면을 만들어 먹게 되면서 가게를 냈다.

신씨는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전통 방식으로 이북식 냉면을 만든다. 메밀과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가루로 직접 반죽해 면을 만들고, 최상급 사골로 육수를 낸다. 보통 일반 냉면은 식초나 설탕 같은 조미료를 넣어 새콤한 맛이지만 평양냉면은 사골육수로 우려내 담백한 맛이 난다. 비싼 사골육수를 고집하는 이유는 좋은 재료와 뛰어난 맛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싶은 신씨의 마음 때문이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손수 반죽한 면과 사골을 푹 고아 만든 육수가 어우러져 냉면 맛의 깊이를 더한다.

손님의 90%는 소문을 듣고 가게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일부러 먼 곳에서 시장까지 찾아온 손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신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매일 가게 문을 연다. 혹시라도 헛걸음하게 될 고객을 위한 배려다. 가게를 지키는 것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는 “음식으로 손님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으로 장사하면 그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며 “가업을 잇는 자부심으로 가게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041-551-4851

없어서 못 파는 장터왕족발

남산중앙시장에서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인 ‘장터왕족발’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맛집이다. 사장 정균옥(53)씨는 2001년 아는 지인의 가게를 인수받아 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면서 맛과 양심으로 13년간 정직한 장사를 해왔다. 가게가 시장에 위치해 있어 덕을 본다는 정씨는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족발 삶는 냄새가 온 시장을 뒤덮을 때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다.

‘장터왕족발’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뛰어난 맛 때문이다. 이곳의 족발은 냉동 족보다는 냉장 족을 사용해 쫄깃한 맛이 살아 있고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지난 족은 취급하지 않는다. 파·마늘·생강·양파 등으로 비린내를 제거해 잡냄새를 없애고 그날 삶은 족발은 그날 바로 팔기 때문에 신선하다. 이렇게 팔리는 족발은 오후가 되면 일찍 동난다. 주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인터넷 블로그의 맛집 소개 글을 읽고 일부러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다. 주로 젊은이들이 블로그에 ‘천안 맛집’ 방문 후기를 쓰게 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자주 찾는다고 한다.

정씨는 장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양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러 먼 곳에서 우리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이 많다”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양심 있게 장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마트보다 정이 넘친다. 그만큼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편하고 반갑게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 041-564-2707

믿음·정직 최우선 난주단

한복 전문점 ‘난주단’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한복으로 유명하다. 사장 손지유(58)씨는 천안 남산중앙시장에서 28년째 ‘난주단’을 지키고 있다. 한국전쟁 후 대전 원동중앙시장에서 손씨 시어머니가 먼저 한복집을 차리고 1966년 시누이가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77년부터 지금까지 3대째 한복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미술교사였던 손씨는 멋스러운 한복에 매력을 느껴 교편을 내려놓은 후 본격적인 한복 사업에 뛰어들었다. 30여 년 동안 한복을 판매하며 사람들의 신뢰와 호응을 얻어 ‘난주단’은 천안의 사장 한복집으로 자리매김했다. 손씨는 한복의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평소 한복 관련 책을 자주 보거나 서울 인사동, 동대문·종로 패션거리를 찾아 색이나 디자인을 유심히 본다고 한다.

한복 구상부터 디자인까지 손씨의 손길이 곳곳에 배어 있어 고급스러운 멋이 더해지고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정품 비단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세련된 한복이 탄생한다. 보통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복집의 경우 한복 한 벌당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난주단의 한복은 50만원대의 정직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난주단’의 명성을 아는 몇몇 사람은 일부러 서울 압구정동 같은 먼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정직과 신뢰를 먼저 생각한다는 손씨는 “시장에 있는 한복집이라 품질이 나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재래시장 상인들도 손님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정의 눈길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41-551-2505

글=이은희 인턴기자 eunhee92@joongang.co.kr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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