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소화기 질환-기능성 위장장애(5)|최규완<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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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의 질병은 크게 기질성인 것과 기능성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기질 성이란 신체의 조직에 염증·궤양 혹은 혹과 같이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일으키는 병이고. 기능성이란 이렇게 눈에 띄는 병 변은 전혀 없으나 그 기관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일어나는 병이다. 그러므로 기능성 위장장애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실시해도 아무런 기질적 이상은 찾아낼 수 없지만 위장관계의 증상. 예컨대 구역·구토·트림·속 쓰림·복통·설사·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모두 지칭하는 병 변이 된다.
기능성위장장애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특히 소화기내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에게는 환자들의 80%이상이 이 병으로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능성 위장장애란 병명은 사용된 지가 오래되지 않으므로 아직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한번은 어떤 중년부인이 가끔 구역질이 나고 헛배가 부른 증상이 있어 찾아왔는데 여러 가지 검사 끝에 별다른 이상이 없으므로 기능성 위장장애로 진단을 하고 이 병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약을 지어 준 적이 있다. 그 다음 얼마 후에 재 진을 받기 위해 왔을 때. 그동안 병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더니 약을 한번도 먹지 않았는데도 모든 증상이 깨끗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약은. 처방에 따라 지어 갔지만 집에 가다 생각해 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서 약을 한 짐씩 지어 주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약은 그대로 두고 음식을 조심해 보았더니 증상이 깨끗이 가셔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찾아온 이유는 이러한 경우에 구태여 약을 먹어야만 되는가, 아니면 먹지 않아도 되는가를 확인하기도 할 겸 그 약은 보관해 두었다가 먹으려 하는데 어떤 증상이 있을 때 먹으면 좋을 것인가를 알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곁들여서 기능성위장장애란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또 약을 쓰지도 않고 간단히 병을 낫게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에 있어 기능성 질환은 대개가 정신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 처음 증상이 시작하는 것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이 먹거나, 또는 주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쓸 때 일어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그러한 원인이 없어지면 곧 정상상태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이 오래 계속될 때에는 거기에 대해 걱정하고,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다시 기능성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증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병적인 상태로 된다. 그러므로 위에 소개한 환자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 검사로써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되기만 해도 병이 낫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병에 있어서는 환자가 자신의 병에 관하여 올바로 알고 자신의 주치의에 대해 확고한 신뢰감을 가질 수만 있다면 별다른 약을 쓰지 않고도 쉽게 나을 수 있다. 의사는 환자를 자기의 친 가족처럼 보살피고, 환자는 의사를 역시 친 가족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다면 상당히 어렵게 보이던 병도 비교적 쉽게 낫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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