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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억 짜리부터 몇만 원대까지, 다 같은 가죽이 아닌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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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가죽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조건

원피는 가죽의 근본이기 때문에 동물이 살아 있을 때나 가죽을 벗겨낼 때 칼자국이나 외상이 생기면 좋은 가죽이 될 수 없다. 명품 가죽 하우스라 불리는 에르메스의 경우 호주의 특정 악어 농장으로부터 악어가죽을 공급받는데, 특히 엄선 과정을 거친다. 싸움을 많이 하는 악어의 경우에는 피부에 스크래치가 많아 곤란하고, 땀구멍이 대칭으로 고르지 않은 악어는 선호하지 않는다.

또 그해 호주의 기후에 따라 가죽 품질이 달라지는데, 악어가죽을 전혀 구매 하지 않고 악어 백을 만들지 않는 해도 있다. 명품 브랜드는 동물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도살되기 직전까지 어떤 성향으로 살았는지 조사한 후 원피를 구입한다. 도살 시기 또한 가죽의 퀄리티와 연관이 있는데 쇠가죽의 경우 여름에 도살된 소는 살찐 상태에서 가죽이 되어서 겨울에 도살된 소보다 훨씬 더 품질이 우수하다.

가죽은 여자 얼굴과 같다

얼굴이 예쁜 여자는 BB크림만 발라도 예쁘다. 가죽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가죽은 별다른 문양을 찍어내거나 요란하게 가공하지 않아도 품격이 느껴진다. 반면에 얼굴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여자들이 메이크업의 힘을 빌리듯, 품질이 떨어지는 가죽은 표면에 인위적인 무늬를 찍어 품질을 좋아보이게 만든다. 여자의 얼굴 또한 매일 가꾸고 상처나 잡티가 없어야 화장이 잘 받는 것처럼, 좋은 결의 가죽이 색감을 표현하기도 좋다.

가죽 종류에 따라 용도와 디자인이 달라진다

가죽은 크게 원피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 말 같은 큰 동물의 원피를 하이드(Hide)라 하고 송아지나 염소 같은 작은 동물의 원피를 스킨(Skin)이라고 부른다. 카프스킨은 6개월 미만의 송아지 가죽으로 모공이 작고 표면이 부드럽다. 샤넬, 프라다, 발렌시아가와 같은 고가 브랜드의 핸드백과 구두, 의류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램스킨은 얇고 감촉이 부드럽지만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염소가죽은 얇고 부드러운데도 내구성이 강해 대체로 가방이나 장갑 등에 사용된다.

가죽에 따라 디자인 또한 달라지는데, 벨기에의 명품 가죽 브랜드 델보에서는 디자인 모델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가죽이 무엇인지 공방의 전문가들과 디자이너가 상의한 후에 어떤 가죽으로 어떤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지 결정한다. 예를 들어 좀 더 힘 있는 구조적인 디자인을 만들어야 할 때는 박스 카프(Box calf)와 세리에(Sellier) 가죽을 선택하고, 부드러운 유선형의 디자인을 표현할 때는 폴로(Polo)라는 가죽을 사용한다.

베지터블 태닝 vs. 크롬 태닝

태닝에 따라 가죽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태닝은 진피를 화학적, 기계적으로 처리해 부드럽고 질긴 가죽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태닝의 방법은 베지터블 태닝과 크롬 태닝, 오일 태닝, 알루미늄 태닝 등 그 방법이 여러 가지다. 그중 화학 성분을 사용하는 크롬 태닝은 가죽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베지터블 태닝에 비해 감촉이 부드러우며 열에 강하다. 또 염색이 용이하다. 반면에 식물 성분을 사용하는 베지터블 태닝에는 보통 오크나무 껍질, 도금양, 미모사, 도토리가 사용된다.

이 식물들의 용액은 가죽에 함유된 콜라겐과 잘 결합하여 가죽에 강한 내구성과 물과 온도에 대한 저항력을 만들어준다. 태닝의 퀄리티는 태닝 성분과 태닝 시간에서 결정된다고들 한다. 현재 유럽에서 최고의 무두장이로 꼽히는 장인은 내구성이 강한 가죽을 만들기 위해 태닝하는 데 최소 1년에서 15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바 있다. 그래야 태닝 성분이 5~8mm 두께의 생피에 완벽히 침투하기 때문이라고.

만드는 이에 따라 결정되는 가죽의 가치

가죽은 살아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다루는 손길이 매우 조심스럽고 노하우가 필요한 재료이다. 에르메스는 직접 가죽 장인을 양성하는데, 가죽 장인은 3년 과정인 에르메스 가죽 장인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그 후 2년 동안 수련 기간을 거친다. 이러한 장인 1명당 일주일에 만들 수 있는 가방은 고작 2개. 델보는 가죽의 퀄리티를 마지막 과정에서 장인의 눈과 손의 느낌만으로 한 번 더 평가한다. 이는 최신 기계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매우 정교한 작업으로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과정이다.

기획=김은정 레몬트리 기자
도움말 및 사진=임성민(피브레노 대표), 에르메스코리아, 델보

[사진 설명]
1 사진은 1951년 다음 시즌의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2 현재 에르메스의 가죽 아뜰리에에는 500여 명의 가죽 장인이 있다.
3 벨기에의 전 여왕 파올라를 위해 델보가 1959년에 만든 '몽 그랜드 보뇌르' 백.
4 1908년 ‘라 프린세스’핸드백의 디자인에 대한 등록 문서.
5 에르메스의 콩스탄트 백
6 델보의 브리앙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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