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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쑥날쑥 벌점 … "상벌점제 이의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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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은 지난 8월 21일 도내 모든 초·중·고에 학생생활평점제 폐지 권고 공문을 보냈다. 학생생활평점제란 2009년부터 교사가 학생 생활지도수단으로 사용해온 상벌점제로, 경기도 내 초등학교 18.24%, 중학교 85.2%, 고등학교 82.3%가 운영해왔다. 교육청은 교사마다상점·벌점 부과 기준이 들쑥날쑥하고 학생 계도 효과도 유명무실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실 경기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를중심으로 비슷한 문제 제기가 진작부터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상벌점제는 생활지도 수단이자 인성교육 방편이라 유지해야 한다”며 폐지에 대해 반발했다. 또 상벌점제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폐지가 대안이냐”는 질문에는 답이 엇갈린다. 상벌점제의 문제점과 대안을 알아봤다.

고무줄 기준 … 반성 없고 불만만 높아

학생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불만은 상벌점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물론 정해진 규정은 학교마다 있다. 하지만 같은 행동에도 언제는 벌점을 받고 또 다른 때는 그냥 넘어가기도 해 왜 벌점을 받았는지 본인이 정확한 이유를 모를 때도 많다.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2학년 김모군은 “지난해 넥타이를 조금 비뚤게 맸다고 ‘복장 불량’ 벌점을 받았는데 얼마 전엔 명찰을 안 달았는데도 ‘내일 달고 오라’는 지적만 하고 벌점 없이 그냥 넘어갔다”며 “수긍할 만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 벌점을 받으면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운 없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학부모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2 자녀를 둔 신경미(47·서울 양천구)씨는 “아이가 벌점 받을 때마다 학교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며 “오전 수업에 졸았다고 벌점, 뭐 이런 식인데 학교 안에서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내가 일일이 알아야 하나 싶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나마 신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학교의 상벌점제 알림 서비스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중3 학부모인 워킹맘 최지영(45·수원 영통구)씨는 “아이가 지각이나 복장 위반으로 벌점 받았다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한 잘못은 교사가 훈육하면 될 일인데, 교사는 기계적으로 아이에게 벌점 주고 학부모에게는 알림 메시지 남기는 건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받은 엄마가 아이를 혼낼 테니 정작 악역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벌점 받기는 쉬운데 상점 받는 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상벌점제가 아니라 그냥 벌점제”라는 얘기다. 김군은 “쉬는 시간에 친구랑 얘기할 때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걸으면서 빵 먹었다는 식의 사소한 일로 벌점을 받는데, 정작 잘한 일에는 제대로 칭찬도 안 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벌점 받을 땐 사사건건 트집 잡히는 기분이고, 칭찬 받을 일을 해도 상점을 못 받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사 “문제 많지만 대안 없어”

이런 현실에 대해 교사들은 “문제점에 공감은 하나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역삼중 이순철 교사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서울은 2012년, 경기도는 2010년) 이후 교사가 교실 상황을 통제할 권한이 별로 없다”며 “상벌점제마저 없으면 학생을 선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지적하는 ‘교사의 벌점 남용’이나 ‘고무줄식 잣대’에 대해서는 “학교 현장을 몰라서 나오는 오해”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일반고 박모 교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상벌점을 처리한다”며 “벌점을 남용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또 “학생 입장에선 ‘어쩌다 한번 넥타이 안 매고 왔는데 벌점 받아 억울하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렇게 사소한 일로 벌점 주는 교사는 없다”며 “지속적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 지적했으나 행동의 변화가 없을 때 벌점을 주는 걸 학생들은 마치 교사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걸로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문모 교사는 학생과 교사의 시각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생이 종례시간에 복도에서 비속어를 사용하며 떠들다 교실에 늦게 들어왔다면 교사는 당연히 벌점을 주고 훈계를 한다. 하지만 학생은 ‘교실 앞에 선생님이 서 있어서 뒷문 열고 들어갔는데 벌점 받았다, 어쩌라는 거냐’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문 교사는 “교사 생각엔 고등학생 정도 되면 자기 잘못은 충분히 알겠거니 싶어 벌점 준 이유를 일일이 설명 안 하는데, 거기서 오해가 많이 생긴다”고 얘기했다.

 또 박 교사는 “교사 한 명이 학생 30~40명이나 가르쳐야해 학생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필요하다”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상벌점제가 교사를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게 문제”라고 꼬집기도 한다. 학부모 신씨는 “미국 학교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지속적으로 상담하며 해결한다고 들었다”며 “교사가 상벌점제를 고집하는 건 학생에 대한 애정은 없는 행정편의주의 같다”고 말했다.

장원중 학생자치법정에서 검사 역을 맡은 학생이 벌점 받은 학생에게 경위를 묻고 있다. 이 학교는 벌점 부과 여부를 학생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김경록 기자

통제 대신 자율 … “학생자치법정이 대안”

사실 상벌점제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학생·학부모뿐 아니라 교사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다. 계도 효과가 크지 않은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한다는 얘기다. 또 제대로 된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방안으로 교사는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현실에 맞는 권한이, 학생이나 학부모는 무엇이 잘못이고 왜 벌을 받는지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소리를 높인다.

서울 중구 장충동의 장원중 설선국 부장교사는 “학생 선도와 훈육에 대한 권한을 학생에게 넘기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학생 자치를 통해 서로를 계도하게 하면 상벌점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원활히 공유되고 생활지도에 대한 효과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설 교사는 “전국 1000여 개의 초·중·고교가 상벌점제 운영을 학생자치법정에 맡기고 있는데 대다수 학교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치법정이란 학생끼리 판사·검사·변호사·배심원단을 구성하고 벌점이 누적된 학생을 피고로 세워 벌점 누적 사유 등을 듣고 재판한 뒤, 교내 봉사 등의 판결을 내려 벌점을 탕감해주는 제도다. 서울에서는 장원중을 포함해 대진고·양진중 등 281개(초21·중160·고100) 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대다수 학교가 상벌점을 부여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권한까지도 학생자치법정부에 맡기고 있다. 대진고 홍미경 교사는 “자치법정부 운영 위원을 맡은 학생들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거나 1년간 재판한 기록을 토대로 현실성 없는 상벌점 기준은 매년 수정한다”며 “학생이 직접 상벌점 기준을 만들고 법정 운영까지 하고 있어, 불만도 적고 참여에도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장원중 자치법정부 판사로 활동하고 있는 3학년 민정현양은 “선생님이라면 봐줄 법한 잘못도 우리끼리 법정을 열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속어 사용으로 벌점을 받았다면 ‘친구 다섯 명에게 고운말 사용 인증 사인을 받아오라’고 판결하는 식이다. 민양은 “선생님이 지도한다면 ‘앞으로 그러지 말아라’고 타이르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같은 친구끼리는 언어 사용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서로 확인해주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도 “학생 자치인 경우 상벌점 문자 메시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결 덜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원중 학부모 안현숙(45·서울 중구)씨는 “학교의 벌점 항목이 10개가 안 돼 학부모 모두 숙지하고 있고 법정에서 제대로 소명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설 교사는 “학생에게 생활지도 권한을 넘기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라고 우려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학생의 눈이 훨씬 정확하고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는 “효과적인 학생 지도를 위해 교사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학생을 제도 운영의 주체로 내세우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식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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