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충성 보이자" 푸틴 흉상까지 설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최근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러시아의 대기업가들은 모스크바의 미술품 판매회사인 '창조적 에이전트'로부터 광고 메일을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흉상 조각품을 판매한다는 광고였다.

석고에 청동 도금을 했다는 조각품의 가격은 높이 60cm.무게 10kg짜리가 230달러(약 23만원), 높이 40cm.무게 6kg짜리가 130달러였다. 싼 가격은 아니었다. 판매사는 "푸틴의 흉상은 큰 돈 들이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징표"라며 "기업에는 아주 필요한 제품"이라고 선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구입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광고는 러시아의 정.재계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말 민간 석유기업 유코스의 전 사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탈세 등의 혐의로 9년 실형을 선고받은 뒤 러시아 재계는 초긴장 상태다. 상당수 기업인이 호도르코프스키처럼 불법으로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사정 당국의 수사가 확대될 것이란 말이 나오며 재계는 떨고 있다. 이에 기업인들은 크렘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치열한 막후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다.

지난 3일 러시아 최대 유력 일간 '이즈베스티야'의 소유권이 이전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즈베스티야 지분의 절반을 가진 금융 재벌 '인테르로스'는 지분 전체를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에 전격 매각했다. 호도르코프스키 판결이 나온 직후였다.

이 거래에 크렘린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2008년 대선에서 정권 재장악을 노리는 크렘린이 언론 장악에 나서 거래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