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겨울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야 진정한 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겨울하늘 높이 날 수 있어야 만이 진정한 새라고 할 것이다. 날개 끝에 무수히 바늘 꽂히는 냉기를 떠받고 바르고 아름답게 몸의 평형을 지탱하며 나는 그 유연한 날갯짓.
사람이 다다르지 못하는 아득한 공중을 날아, 눈 덮인 준령을 넘어오는 새들의 비상. 하기야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눈떠 있었을 그 날아오름의 혼백을 누가 막을 것인가.
그러나 이에 생각할 바가 있다. 새들은 그 나름의 전력을 다해 날고 있을 것이며 사람들 역시 그렇다. 저마다 혼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 공통점에 목숨을 지니는 자들의 뜨거운 공감이 있어지는 것이리라.
천진 암 깊은 산중에 한 수도단체가 살게 되면서 연로한 수녀 한 분이 힘겹게 서울을 왕래한다. 하루에 한번 왕복도 벅찬 거리인 걸 두 번을 다녀갈 때가 있다 마하여 사람들은 쇳덩이 같은 건강이라고 놀라지만 본인의 표현은 더 단순하다. 『사력을 다하는 것이지요』 단지 이 말 뿐이다.
그렇듯 새들도 사력을 다해 겨울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망망대해 같은 공중에 날개를 쉴 나무 한 그루도 있을 턱없다.
두껍고 거대한 빙판을 가슴과 날갯죽지로 쾅쾅 깨뜨려 내면서 필사의 비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을 누리고 있는 누구 나가 삶의 값을 치르며 산다.
토큰을 내고 버스를 타듯, 혹은 먹은 후에 셈하는 점심 값이라 할지라도 필연코 댓 가를 지불하게 마련이며 이에 있어 더욱 중요한 건 과연 그 이상으로 삶은 값진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한 알의 곡식이나 한 송이 꽃도 강렬한 의지와 전 폭의 투신으로써만 바꿔 올 수 있었으며 스물네 시간을 재량으로 쓰되 날 저물면 사람들은 그날의 수확을 살피는 평가와 성찰의 저울대위에 선다. 그리곤 각자의 양심이 이 눈금을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삶의 두려움이여.
그러나 이만한 긴장과 드릴도 없고서야 무슨 맛인가 말이다.
칼날 위에서 춤추는 무당들은 이따금 저들의 작두칼날을 손보는 것인지?
그리고 검객들은 찬물을 끼얹으면서 숯 돌에 칼날을 세워 가히 이슬떨기가 맺힌다 할만큼 곧고 환하게 그의 도 신을 보전하는 것인지?
우리 또한 오성의 거울을 티없이 영롱하게 닦아 가려진 영혼까지 투명 히 얼비치게 해야 한다고 여겨지기만 한다.
삶은 동반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줄곧 산길을 간다. 올라가는 어려움 못지 않게 내리 구르는 추락을 스스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터이므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난감한 행로다. 사람은 더 나은 자기를 끝없이 갈망한다.
기록을 깬 운동선수는 또다시 기록을 경신하고 싶은 불같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무 한량이다시피 자신의 충족을 탐내는 강한 집착이 그의 체중을 가파롭게 떠올려 춤으로써 눈과 얼음의 길을 걷고 한더위 땡 별 속을 또한 마다 않고 걸어간다.
정녕 이상도 하다.
삶에 있어선 격렬한 상승 본능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으며 그렇다고 새처럼 하늘을 날게도 못 될 그 한 점안에서 사람은 넘어지곤 다시 일어서는 되풀이를 거듭한다.
겨울은 햇볕이 흐리고 도시와 벌판도 황량해 보이나 기실은 겨울처럼 성숙하고 용사 적인 계절이 다시없다.
마치도 점화의 준비를 갖추어 두고 잠시의 유예에 머물러 있는 불의 축제에 의할 수 있다.
땅속에나 바닷 속에까지 불 심지를 꽂고 부산히 움직이는 그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언제라도 세찬 불기둥으로 솟을 수 있는 기름 탱크 옆에 성냥이 마련되고 성냥 끝조차 이미 벗은 몸으로 나와 버리고 있다.
그러면서 침묵한다.
강한 자의 양보와도 같이 저력 있는 침묵 앞에서 우리는 새해의 설계도를 펼쳐 놓는다.
지하의 나무뿌리들은 터질 듯한 생명의 충전으로 숨가쁘고 그러면서 바깥은 이리도 고요 한이 교훈 앞에서 우리의 새해를 설계한다. 허약한 손과 미숙한 사념인 줄도 알면서 순백의 석고판 속에 새 염원과 그 서약의 글씨를 새겨 넣고 있다.
『삶의 보람은 알프스의 바위틈에서 꺾는 에델바이스』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새삼 곱씹는다.
『자신이 행복한지 어떤지는 묻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함께 있는 사람이 행복한지 어떤지는 살펴야 한다.』
이런 말이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기도 한다. 관계 사이의 지혜야말로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목마른가.
다른 말을 또 집어 올려 본다.
『그대가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 바를 믿고는 있다. 그러나 과연 나를 참아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관계의 개선은 곧 <나의 개선>에서만 가능함을 수긍한다 곤해도 <나의 개선>이야말로 <은세계의 개선>만큼이나 복잡하고 거의 불가능함을 정녕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대로 새해가 다시 왔다.
눈도 부신 한 장의 순지를 받아 놓고 아무든 손을 씻는 심정이다. 눈을 감으면 이대로 기도가 될 것 같은 허심이요, 지극한 무력감이기도 하다.
겨울풍경처럼 바깥은 침묵이면서 보이지 앓는 내면엔 무겁고 깊은 침잠, 그리고 그 더욱 안 쪽에서 순열한 불씨를 하나씩 마련하는 그런 한해이고자 염원하고 아울러 전력으로 이에 헌신하려는 것 밖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