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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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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위험한 심장병에 걸렸다고 치자. 그대로 있으면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수술할 경우 성공하면 완치되지만 실패하면 죽는다. 성공률이 몇% 이상일 때 수술을 받겠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월랙과 네이던 코간은 이 질문을 피실험자들에게 던진 적이 있다. 각자 혼자 생각해 나온 대답은 평균 55%였다. 그러곤 6인1조로 나눠 토론하게 한 다음 만장일치로 합의된 수치를 조별로 발표하게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평균 47%로 나왔다. 또 토론 후 피실험자들은 혼자 정했던 수치를 조금씩 낮춰 다시 제출했다.

월랙과 코간은 질문을 바꿔봤다.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새 회사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돼야 전직할 것인가,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옮길까 하는데 그 나라에서 정변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돼야 할까….

결과는 비슷했다. 혼자서는 대체로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집단토의를 거치면서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대안으로 기울었다. 또 토의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을 감수하려는 태도가 강해졌다. 심리학에선 이를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라고 한다. 여럿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을 경우 겁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결과가 잘못될 때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혼자 정하면 책임도 혼자 진다. 반면 여럿이 결정하면 개인은 머릿수분의 1만큼의 책임만 느끼기 쉽다. 책임감이 가벼워져 더 용감해지는지도 모른다.

물론 혼자 내리는 결정이 낫다는 건 결코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지혜를 모으자는 게 집단 의사결정의 목적이다. 그래야 정당성도 인정받는다. 다만 결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토의시간이 길어지지 않게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과 안전성을 재확인하라고 권한다. 또 집단토의엔 오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라고도 한다.

요즘 정치권에선 '위원회 정치'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위원회가 월권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리스키 시프트'에 의해 겁이 없어진 탓일까. 수술이나 전직처럼 개인사라면 모를까, 국가정책이 이런 함정에 빠지면 곤란하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