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열 많으면 안 맞는다? 인삼의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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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박정일
서울대 약대 교수

농림축산식품부가 2018년까지 2000억원을 투자해 인삼 수출액 3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올 7월에 세웠다. 정부가 인삼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푸드로 육성한다는 구체적인 전략과 비전을 수립한 것은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인삼 수출은 2011년 1억89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7500만 달러로 감소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고려인삼은 열이 많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은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대 중국의학 문헌에 “고려인삼은 온(溫)하고, 화기삼과 중국삼은 량(凉)하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온’과 ‘량’은 달고 쓴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북미에서 이를 ‘따뜻하다’ ‘서늘하다’로 번역해 날씨가 무더운 동남아 지역에 퍼뜨렸다. ‘고려인삼은 체질이 더운 사람이나 더운 지방 사람들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 미국삼(화기삼)을 수출하기 위한 전략이다.

 인삼이나 홍삼은 인체의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혈류개선을 도와 손·발 같은 말초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열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체온이 상승하거나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3년 간 한·중 공동연구를 통해 고려인삼이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또 베이징의 중일우호병원 순환기과 진은위안 박사팀은 홍삼분말을 섭취했을 때 정상인은 혈압에 변화가 없고, 고혈압 환자는 오히려 호전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대 약대 한용남 교수팀이 2001~2008년 연구한 결과도 고려인삼을 섭취하면 혈류량과 혈류속도는 증가하지만 맥박과 혈압, 체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국 전통의학의 기본이 되는 『신농본초경』에는 인삼의 성질이 약간 차다고 기록돼 있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국제 학술대회 등을 통해 고려인삼에 대한 잘못된 속설을 바로잡고 우수성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

박정일 서울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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