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식민지배 정당화에 쓰인 '조선 풍속 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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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지음, 민음사
288쪽, 2만원

카메라는 보이는 대로 필름에 담고, 사진은 그대로 사실인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진 밖의 시선, 찍는 자와 찍히는 대상의 관계는 '지배-피지배 관계'가 될 수 있다.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붐을 일으킨, 싸고 편리한 사진엽서가 바로 그랬다.

카메라는 제국주의 정신을 지탱하는 과학적 도구였다. '서구가 발견한' 식민지인의 야만적이고 초라한 정경은 상품과 오락의 형태로 대중에 은밀히 스며들어 지배자의 위치를 정당화했다.

서울시 학예연구사인 지은이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한 자료를 추린 300여 장의 사진을 분석한 이 책은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당시 관광 팸플릿이나 조선 안내 책자에 반복해 실린 짚신이 가득 담긴 지게를 진 남자, 젖가슴을 드러낸 채 물동이를 진 여자, 아름답지만 가련한 기생등의 사진들이 바로 그렇다. '조선 풍속'이란 미명하에 유포된 이런 류의 사진들은 조선인이 '단순히 옷 잘 입은 아이누 족(당시의 일본 하층 부족)'이란 이미지를 심으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조선 풍속'으로 소개됐던 그 이미지가 오늘날 관광기념품에서도 '한국의 미'란 이름으로 재생산되기에 이 책은 진기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겠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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