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발계획을 인사수석에 맡기는 국정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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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정운영의 기본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 조직법상 각 부처가 갖고 있는 고유 업무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원칙이 무시된 채 정부 내의 이른바 힘센 조직에 의해 각종 정부 사업이 추진되는가 하면, 그 같은 운영 방식에 대한 감시 시스템도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철도공사 유전개발 의혹 사건 하나만이라면 혹시 부분의 문제로 여기겠으되 행담도 개발 사업마저도 그 같은 시스템상의 문제에 기인했다는 사실은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함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행담도 개발 의혹과 관련된 서남해안 개발 사업에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깊숙이 개입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인사수석에게 그 같은 일을 맡긴 이유가 그 지역을 잘 아는 호남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결국은 그런 식의 업무 분장 및 지시가 서남해안 개발 사업의 명분과 당위성마저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점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특히 주무부처 장관인 건설부 장관이 아니라 참모 조직인 청와대 인사수석에게 임무를 부여했다는 것은 서남해안 개발 사업이 행정적 수요보다는 정치적 수요에 의해 추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뒤늦게 국무총리가 정부 추진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재점검을 지시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국책 사업의 점검과 동시에 당장 행담도 사건에서 문제가 된 대통령 자문 동북아위원회를 비롯, 정부 내의 각종 자문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에 대한 전면적 점검을 해야 한다. 현재 공무원이 파견돼 사무국을 두고 있는 정부 내 21개 자문위원회 중 17개가 대통령 자문위다. 어찌 보면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기능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정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 작업이 따라야 한다.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고 동시에 오류의 원인을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정부 내 각 부처가 자신의 고유업무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도 무소신과 무책임 때문이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입체적인 감시 시스템이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