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독, 러 '나치 희생자' 21만 명 배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유권하 특파원

독일이 과거사 청산에서 또 다른 이정표를 남겼다. 28일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재단은 나치 시절 러시아 출신 강제 노역자에 대한 배상을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다. '기억.책임.미래' 재단은 2000년 특별법에 의해 나치 시대 강제노역자와 피해자에 대한 재정적 배상을 위해 설립됐다. 정부와 강제노역자를 동원해 혜택을 본 기업들이 절반씩 총 50억 유로(약 6조55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을 해 왔다.

재단은 지난 4년간 러시아 측 민간단체와 손잡고 21만1000명의 피해자에게 3억2600만 유로를 지불했다. 1인당 최대 7500유로가 지급됐다. 러시아의 월 평균 연금 수입이 65유로에 불과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은 큰돈이다. 실무작업을 맡았던 러시아의 '상호 이해와 화해' 재단의 안드레이 보이코프 이사장은 "독일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후회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표시"라며 반겼다. 일간 디 벨트지는 "배상금을 받은 러시아의 나치 피해자들이 크게 기뻐했다"며 "배상액이 희생자들의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해 줄 수는 없어도 상징적으로 과거를 용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독일이 나치의 잘못에 대해 배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피해 복구를 위해 소련.폴란드 등 피해국에 약 200억 유로를 지원했다. 1953년 이후에는 '연방보상법'을 만들어 여러 차례 나치 시대 희생자들에게 총 614억 유로(약 85조원)를 배상했다. 희생자가 생존하는 동안 계속 배상한다는 원칙에 따라서다. 정부 차원의 배상과 함께 민간 차원의 배상도 병행해 왔다. 특히 자발적으로 피해자 개인에 대해 배상조치를 해 왔다는 점이 돋보인다.

독일은 배상작업과 더불어 각종 과거사 청산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나치 시대를 반성하는 기념물 조성, 박물관 건립 작업은 물론 나치 희생자를 위한 의학적인 치료 프로그램과 장학금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본과는 너무 다르다.

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