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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기숙사 '불시 점검'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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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성균관대 기숙사(명륜학사) 입구와 승강기 내부 등에 ‘명륜학사 입사생 호실 점검’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기숙사 사감·생활조교가 6일부터 10일까지 기숙사 모든 호실을 돌아다니며 불시에 방 검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숙사 측은 “입사생이 외출해 없으면 임의로 방문을 열고 점검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점검 내용은 비(非)사생 동반 출입 여부 ▶타사생과 호실 교체 여부 ▶주류 보관 및 음주·기숙사 내 흡연 여부 ▶청소상태 등이다.

성균관대 측이 기숙사 출입문 등에 게시한 입사생 대상 불시점검 안내문(왼쪽)과 이 대학 로스쿨생들이 기숙사 복도에 붙여 놓은 ‘불시점검 반대’ 글 중 일부.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 기숙사 규정에 따르면 비사생을 기숙사 안에 들어오게 하면 벌점 20점, 사생들끼리 호실을 무단으로 바꿔 사용하면 벌점 15점을 받는다. 지도·점검에 불응하거나 불손하게 대응해도 벌점 8점을 부과한다. 벌점 합계 15점 이상일 경우 퇴사 조치된다. 총 6개 동에 마련된 명륜학사에는 외국인 학생을 포함해 약 1200명의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학교 측이 불시점검을 공지하자 기숙사에 거주하는 80여 명의 성균관대 로스쿨생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일 기숙사 곳곳에 ‘불시 호실 점검 반대’라고 적힌 A4용지를 붙이고 “불시점검 강행 시 이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입사생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설명과 공지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사전 동의 없이 사생의 방에 출입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며 “점검 강행 시 형사상으로 주거침입에 대한 죄책을 묻고 민사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절차를 밟겠다”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기숙사에 사는 A씨(21·여)는 “점검 시 남자 2명이 여자방에 무단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뒤진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균관대 측은 “불시점검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입장이다. 대학 관계자는 “인화성 물질 등을 기숙사 내에 가져온다면 재난 발생 시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반발이 심해 아직까지 불시점검은 실시하지 않았고 학생들과의 대화창구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들은 안전을 위해 기숙사 불시점검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화여대 한우리집 기숙사는 방검사를 실시해 기숙사 반입 금지품목인 전기장판 등을 소지한 일부 학생을 퇴사 조치했다.

로스쿨생 '집단 반발' 대자보
“동의 없이 들어오면
주거침입죄로 고소”

숙명여대 기숙사에 살았던 B씨(23·여)는 “비정기적인 점검은 물론 한 달에 2~3번 정도 불시점호도 실시해 벌점을 매겼다”고 말했다. 이 밖에 경북대·순천대 등 지방 소재 대학들은 대개 기숙사 불시점검을 실시한다고 한다. 지자체나 지방의 장학재단이 운영하는 일부 ‘학숙’에서도 불시점검이 시행되고 있다.

  점검 도중 불미스러운 일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3월 경북대 기숙사(첨성관) 불시점검에 나섰던 한 학생이 점검 대상 방에서 필기도구를 가져갔다가 문제가 됐다. 방 주인이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자 다른 학생들은 “불시점검을 당장 폐지하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논란이 커지자 경북대 기숙사자치회 측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불시점검 제도를 폐지하지는 않았다.

  대학 기숙사 불시점검에 대해 김경진 변호사는 “기숙사 생활수칙에 ‘불시점검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면 법률적 위반은 아니다”며 “하지만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법이 예상한 범위를 넘어서서 점검 횟수가 너무 빈번하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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