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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무택 대원이 전하는 지난 1년간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4년 5월18일 오전 10시10분.

▶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던 도중 설맹으로 헤매다 숨진 채 발견된 계명대 원정대 박무택(36) 등반대장.(대구=연합뉴스)

나,박무택은 후배 장민과 함께 초모랑마(8천8백50m,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 정상을 밟았다.홍길 형과 함께 네팔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후 2년 만이다.우리 둘은 정상에서 간단한 기념 촬영을 했다.그리고 스노 피라미드를 거쳐 세컨드 스텝 위까지 내려오는 동안 히말라야 원정이 처음인 장민이 탈진상태를 호소했다.아직도 갈 길은 먼데 걱정이다.게다가 나는 설맹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앞이 안보이니 움직이기가 어렵다.

어떡해야 하나.그렇다고 민이에게 나를 끌고 가라 할 수도 없다.그것은 내 욕심이다.잠시 고민하다 (민이에게) 힘들더라도 혼자 내려가 셰르파를 데려오라고 말한다.8천7백m 죽음의 지대에서 혼자 있는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지만 이 길만이 둘 이 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민이와 헤어지고 나니 나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게다가 산소도 떨어진다.고통스럽다.

정상 아래에는 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공포도 공존한다.우리는 탈진과 설맹으로 하산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정상에서 얼마 내려오질 못했다.얼어죽지 않으려면 오직 텐트가 있는 캠프3(8천3백m)까지 내려가야 했다.어떻게 해서든 텐트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죽음의 지대에서 너무 오랜 시간 노출되다 보니 마취 상태인 것처럼 느껴져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근육은 마비되고 의식은 흐릿해 지고 산소 부족으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동안 내 의지는 사라져 버린다.

벌써 죽음의 기운이 나를 감싼다.저 아래서는 무전기를 통해 나를 깨우지만 정신은 자꾸 혼미해져 간다.내가 정상을 등정한 것은 살기 위해 내려가는 것이지 죽어서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그런데도 내 의지는 의식과 상관없이 겉돌고 있다.

나는 세상을 초자연적인 눈으로만 보지는 않는다.그 동안 히말라야 등반을 통해 얻은 경험이지만 이 고도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찬민이에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4년 전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 간다.2000년 봄,내가 처음으로 홍길 형과 칸첸중가(8천5백86m) 원정을 떠났을 때 우리는 8천5백m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비부악(숙박장비 없이 밖에서 그대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하고 다음날 아침 정상을 밟았다.그 때를 생각한다면 이 것은 별 것도 아닌데…

날이 저문다.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로프에 매달려 설사면 위에 누워 있는다.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내 생명조차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아름답게 빛나는 보라색이 정상 주변에 비춘다.심연 속에 흐르는 롱북 빙하는 안개 속에서 잿빛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주위의 모든 것은 소리없이 고요하다.길게 뻗은 짙은 안개가 서쪽에서 피어 오르더니 산쪽으로 다가온다.그리고 이내 어둠이 온 사방을 감싼다.눈 덮인 정상에서 반사된 달 빛이 산허리 위에 희미하게 빛난다.오래지 않아 날은 밝아오고 태양은 다시 떠오르겠지.

골골거리는 내 마지막 숨소리가 얼마나 더 오래 갈까.나는 이제 생각도 할 수도,말할 수도 없다.추위와 고통과 절망 때문에 너무 지쳐 봉우리에 둘러 싸인 채 잠이 든다.아직 여명이 비치기도 전이지만 푸른 초모랑마의 윤곽이 되살아난다.창백한 노란색이,그리고 생기있는 푸른 잿빛이 정상에서 흘러 내린다.그리고 태양은 정상에 찬란한 금빛을 쏟아 붓는다.

벌써 하룻밤이 지났다.다른 팀의 원정대원 누군가가 고정 로프에 걸쳐 있는 나의 캐러비나를 벗긴다.그리고 나에게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위로만 올라간다.새벽녘 누군가 나를 흔든다.준호 형이다.나는 말을 하지만 준호 형은 알아듣질 못한다.(당시 베이스 캠프에서 백준호 씨와의 무선 교신에 의하면 박무택씨는 얼굴에 이미 동상이 3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누구도 내 말을 더 이상 듣질 못한다.내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일까.아닐 것이다.나는 존재하지만 의식은 서서히 꺼져 간다.

나는 세상과 작별하고 다른 세계에 와 있다.이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아무도 나를 구해 주지 못할 것이다.나를 일부러 데리러 오지 않는 한 나는 조용히 언제까지고 여기 누워있게 될 것이다.검은 색과 흰 색만이 존재하는 하늘아래서 내 육체는 굳어가고 내 영혼은 다시 자라나겠지.

구름만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그리고 한참을 지나 거대한 산 아래 롱복 계곡에도 짧은 한 여름이 왔다.초모랑마에서 내려다 본 산 언덕들은 연한 초록색이 되고 해가 비추는 공중에는 새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세상은 여러 가지 소리로 가득하다.빙하사이로 녹은 물은 시내를 이루며 우렁찬 소리로 흘러내린다.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이내 사라지고 벌써 가을로 접어든다.저 산 아래에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준호 형과 나,그리고 민이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다.(지난 해 10월 손칠규,엄홍길,정오승 씨는 현지 상황파악을 위해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를 찾았다.)그리고 그 소리마저 추운 겨울 바람에 묻혀 버린다.매서운 바람이 사면으로 불어 닥치고 정상 부근에는 거센 눈보라가 구름을 만든다.

마침내 건조한 겨울과 거센 바람이 지나면서 파란 색의 우모복에 황색 신발을 신은 내 모습도 다시 드러난다.

내가 초모랑마 정상을 밟고 하산하다 눈을 감은 지 1년이 지났다.나하고 세 번이나 원정을 다녔고 지난 해 내가 사고 났을 때 다른 팀 셰르파로 하산 길에 옆에서 도움을 줬던 짐바 셰르파가 내 위로 지나가며 나를 쳐다본다.손을 흔들고 싶지만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그리고 며칠 후 홍길 형과 셰르파들이 나를 찾아왔다.이들은 나를 산 아래로 옮기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나는 이들을 보며 '이루려고 해도 이루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인간의 위대한 이상'을 다시 한번 발견했다.너무나 반가웠다.

프랑스의 산악 작가인 가스통 레뷔파는'히말라야는 신비의 왕국이다.이 곳에 들어가는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라고 말했다.나도 끊임없는 한계상황 속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이러한 의지와 애정으로 무장하고 히말라야로 발길을 돌렸었다.

그리고 황량한 산중에서 꼬박 1년을 보내고 지난 해 정상을 밟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문명의 불빛으로 밝은 인간 세계에 다시 나왔다.이를 데 없이 멀고 먼 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인간의 문명으로부터 떼어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게이 셰르파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지 52년 되는 특별한 날이다.지난 24년 에베레스트 초등을 위해 초모랑마를 등반하다 숨진 조지 멀로리의 시신도 75년이 지난 1999년 5월1일 미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콘래드 앵커에 의해 8천2백50m 지점에서 발견됐다.이에 비하면 나는 지난 1년간 외롭게 이름없는 벽 아래서 홀로 지낸 것이다.이제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그 동안 히말라야 창공에서 외롭게 떠돌던 혼을 거둬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정상 아래 스노 피라미드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정상적인 걸음이라면 3 ̄4일이면 족하지만 우리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김세준 중앙m&b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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