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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270>|제75화 패션 50년 (5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70년대 초 패션계의 특징이라면 미니 미디 맥시 팡탈롱의 공존으로 입는 사람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못지 않게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발전에 따른 패션 산업의 태동을 들수 있겠다.
이미 이웃 일본은 대섬유 메이커들이 직접 기성복을 만들어서 내놓는등 섬유산업에서 패션산업으로의 전향이 성행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나라도 경제의 낙후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기울여지기 시작한 대망의 70년대를 맞아 섬유산업이 중요한 수출산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대표가 되어 참가했던 『엑스포70 국제박람회 참가 한국패션쇼』도 이런 국가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리나라 옷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특히 한국산실크의 해외시장을 개척하기위해 무역진흥공사가 주관하고 농림부와 잠사협회가 후원한 행사가 바로 엑스프70이 열리는 일본의 동경과 대판에서 갖게된 한국패션쇼였다.
평소 창의력이 생명인 디자이너는 항상 시야를 넓게갖고 외국의 새로운 문물에 접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온 나는 이번 일본패션쇼에 국제복장학원의 제자들인 몇몇 젊은 디자이너들을 참가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결정된 일행은 디자이너가 오은환 이신우 이영우 송영자 정경자 조용수등 7명이었고 모델로는 한혜나 이계순 노정숙 윤미숙등 4명의 직업모델이 참가했다.
준비한 작품은 모두 60점으로 이중 10점은 궁중예복등 전통한복이었고 50점의 현대의상중 5명의 신진 디자이너들은 각각 2∼3점씩, 그리고 나머지 30점을 내가 맡아 제작했다.
이들 모든 작품에 쓰인 소재가 우리 국산직물중에서도 특히 그 질을 자랑할만한 실크였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쇼는 정부에서 뒤를 미는 공식행사인 만큼 모든 참가자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수출역군이요, 국위선양을 위임 말은 기분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정성들여 준비한 작품을 가지고 일본으로 떠나기 앞서 5월 8일 조선호텔에서국내발표회를 갖고 도일한것이 15일, 일행은 동경에 여장을 풀고 19일부터31일까지 니혼바시(일본교)와 신쮸꾸(신숙)에서 하루2∼3차례씩 일반 공개쇼를 가졌다.
뿐아니라 도레메 양재학원과 문화복장학원에서도 패션쇼를 여는등 도오꾜(동경)에서 먼저 발표회를 가진 다음 6월초 박람회장인 오오사까(대판)로 가서 열흘동안 전세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 의상의 아름다움과 한국산 실크의 우수성을 한껏 자랑해 보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 일행이 일본에서 가진 발표회는 도합 40회 가까이나 되었고 일본패션관계자들의 반응도 퍽 호의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여러차례 외국여행을 했었고 해외발표의 기회도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때 처음 도일한 제자들은 처음 접하는 일본의 문물에 나름대로 느낀것이 많은듯 귀국하는 길에 『많은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구동성으로 여행소감을 이야기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그때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조그마한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뜨고 머릿속 깊이 새기던 그들이 귀국한 뒤에는 각자 자기 일에 더욱 열심히 정진하던 모습이 새삼 대견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1급디자이너로 훌륭히 성장한 그들을 옆에서 지켜볼 때 그 뒤에도 해외패션쇼 때마다 될수 있는대로 많은 제자들에게 견문을 넓힐 기회를 마련해주려 애쓴 보람이 있는것 같아 혼자 흐뭇한 기분에 젖어보기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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