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통령의 MQ(윤리 지능)가 중요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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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친다. 이럴 때 인간이 보이는 태도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즉시 시인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진다. 또 어떤 사람은 구구한 변명을 하고 은폐하며 속이려 든다.

많은 사람이 이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양심'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양심뿐 아니라 학습에 의한 윤리적 분별력, 즉 '윤리 지능'(MQ: Moral Intelligence Quotient)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꽤 양심적인 사람도 자기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을 확률이 100%라고 생각하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다소 부족한 사람도 자기의 잘못이 드러날 확률이 100%라고 생각하면 이실직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전개발 의혹사건과 행담도 개발 의혹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도대체 왜 철도청이 본업을 제쳐두고 러시아 유전개발에 올인 하는가? 왜 그 배후에 정치인과 대통령 측근 인사들까지 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토록 뻔한 말 바꾸기를 계속하고 있는가? 도로공사는 왜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했을까? 그 배후에 왜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나타나고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 나타나는가?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과 고위공직자들이 등장해 쿰쿰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역대 정권의 임기 말에 터졌던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아직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사회중추적인 기관, 그리고 주도 세력의 인물들이 이렇게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토록 '도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개혁과 혁신을 외치고 기존 질서와 시스템을 해체시켜 온 현 집권세력이 벌써 타락했느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현 정권의 주도 세력들은 벌써 윤리성과 도덕성을 잃어버렸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사람들이었나? 그래서 이토록 투명한 디지털 민주사회에서 사회 시스템이 흔들리고 조기 레임덕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버드대의 로버트 콜스 교수는 인간은 윤리적 지능에 의해 태도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 중 어느 쪽이 더 양심적인지 비양심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어 온 보수적인 기성세대를 부패 집단이라고 몰아세우며 개혁을 외쳐온 신흥 진보세력들도 양심적인지 비양심적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최근 터져나온 의혹사건을 보면서 집권세력을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타당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양심' 이 아니라 '도덕 지능'인 것이다. 학습에 의해 형성된 윤리적 분별력이 우리나라 집권 세력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오랫동안 반독재.반부패를 외쳐 왔고 끈질기게 사회 모순을 파헤치고 투쟁해 왔다. 과연 그들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학습했을까. 못된 시어머니를 욕하던 며느리가 나이 들면 그 시어머니와 똑같이 한다는 말이 있다. 학습효과인 것이다.

MQ는 책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다. 보고 배우다 보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 그리고 가장 주목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어려선 부모.교사.친구로부터 MQ를 배우고, 성인이 된 뒤에는 직속상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나 '상급자의 MQ가 하급자의 MQ를 지배한다'는 말은 같은 의미인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개입된 권력형 비리사건은 그 씨앗이 대부분 대통령의 MQ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대형 비리사건을 예방하고 조기 레임덕 현상을 막는 최선책은 바로 대통령이 스스로 윤리지능을 높이고 엄격한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