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서바이벌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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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달 D증권사의 리서치센터 소속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연봉협상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센터장이 지난해보다 대폭 삭감된 연봉을 제시했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봉협상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2~3일은 걸렸다.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들의 신세가 요즘 말이 아니다. '수억원대의 고액 연봉자'라는 말은 일부 스타급 애널리스트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증권사들은 틈만 나면 리서치센터를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시장상황이 워낙 급변하다보니 시황이나 종목분석도 틀리기 일쑤다.

◇호시절은 갔다=LG투자증권이 최근 언론사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로 꼽은 경쟁사의 애널리스트를 영입하자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1위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당장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예 리서치팀을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중소형 증권사인 S사의 리서치센터장은 일선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H사에선 센터장을 포함한 리서치팀 전원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H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서치팀의 전체 급여는 상한선을 정해 놓고 인력은 최고 수준으로 구성하라는 경영진의 요구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연봉도 많이 줄었다. D증권사의 경우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조건으로 리서치팀의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고, H증권도 지난달 대폭 삭감된 연봉으로 협상으로 마쳤다. 입사 13년차인 S증권사 애널리스트는 "2000년에 비하면 연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맞거나 말거나'식 분석=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었던 지난해 5월 삼성전자의 주가에 대해 삼성증권은 6개월 내 72만원, LG투자증권은 1년 내 61만원을 예상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50만~70만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의 주가가 30만원대 밑으로 떨어지자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이라면 살 만하다"는 보고서를 일제히 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 25일 28만원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올해 1분기에 종합주가지수가 1천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많았지만 주가는 폭락했다.

또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단기간 내에 7백선까지는 무난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물거품이 됐다.

상황이 이쯤되니 애널리스트들도 애써 무리를 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거나, 기업전망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중립'의견을 내놓기 일쑤다.

그러다 어쩌다 맞으면 자화자찬식 리포트를 내놓기도 한다. 증권정보업체인 에프엔가이드의 분석에 따르면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보고서에 대해 정정을 한 사례가 월 30~50건에 이른다.

기업전망도 마찬가지다. 특정 기업에 대해 '매도'의견을 내면 해당 회사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더욱 몸을 사린다.

D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 1월초 한 기업의 주식에 대해 매도의견을 낸 뒤 최근 기업방문을 요청했더니 '당분간 방문을 삼가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김준현.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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