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회담 취소'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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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우이(吳儀) 중국 부총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일본은 냉정을 회복했다. 반면 중국은 "회담 취소는 일본 탓"이라며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중국 내 반일 감정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 냉정 회복한 일본=정부 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25일 "(우 부총리의 일방적 회담 취소에 대해) 더 이상 논평하는 것은 양국 관계에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24일에는 중국의 야스쿠니 참배 중지 요구를 '내정간섭'으로 보는 여론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내정간섭은 한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형태의 간섭인데, 그런 것에 해당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 부총리의 귀국(23일) 직후 정치권과 외무성이 "최소한의 국제 매너도 모르는 행위"라며 거세게 비난한 지 하루 만에 달라진 것이다.

일본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동중국해 가스전 개발▶북핵 문제 등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산적해 있는 현실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는 30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인 동중국해 가스전 관련 국장급 협의와 다음달 차관급 대화 등도 예정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 강경한 중국=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지도자가 일본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일본 지도자들은 거듭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얘기함으로써 회담 분위기를 없애버렸다"고 일본을 비난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도 25일 사설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발언이 결국 회담 취소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상하이(上海)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건으로 중국 내 반일 감정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특히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반일 시위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도쿄=유광종.예영준 특파원

*** 중국 우이 부총리는

우이(68) 중국 부총리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빗대 '중국판 철의 여인(鐵娘子)'으로 불린다.

대외 통상을 총괄하는 대외경제합작부의 부부장(차관)을 맡을 때부터 보여준 대담한 일처리와 거침없는 말솜씨 덕분이다. 중국 언론들이 그녀의 호기와 대담함에 대해 아예 '우씨 스타일(吳氏風格)'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을 정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면담 취소도 그의 이 같은 파격적인 스타일이 여지없이 발휘된 사례라고 중국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1991년 대외경제합작부 부부장으로 부임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그가 미국과의 통상 협상 테이블에 나섰던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미국 대표단은 중국의 음반과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무역 보복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마치 좀도둑들과 협상하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명백한 국가 모욕이다.

그러자 우이 부부장은 곧바로 "그러면 우리는 강도하고 담판하는 셈"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당신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중국에서 훔쳐간 것 아니냐"고 몰아쳤다. 이때부터 미국은 물론 중국도 논리정연하고 대담하게 발언하는 이 5척 단구의 여인을 다시 보게 됐다.

98년 국무위원으로 승진한 우 부총리는 시장 질서를 다잡는 특별기구의 책임을 맡아 밀수.가짜 상품.탈세 단속에 앞장섰다. 당시 우 국무위원은 부패 관리와 범죄자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우 부총리가 늘 강인하고 담대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짜 종자.가짜 화학비료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은 뒤 솔직하고 정중한 태도로 농민 대표들에게 사과하는 면모도 보여줬다. 아직 미혼으로 중국 중부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이 고향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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