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본부 감식계 김순정 경장|복잡한 지문도 40분이면 신원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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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현대사회의 병리적 측면을 들 때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바로 범죄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70년7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개통을 계기로 고속도로시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게됐다. 이에 발맞춰 범죄도 광역스피드의 추세를 보이기 시작, 이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수사장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수사의 첫시작이며 동시에 가장 결정적 단서이기도한 지문을 레이저빔을 통해 단시간 내에 정밀하게 모사·전송하는 지문전송기는 과학수사의 「터줏대감」이다.
4대의 수신기와 1대의 헤드머신으로 된 이 지문전송기를 다루는 김순정 경장(29·치안본부 감식계)은 수사의 수문장답지 않게 부드럽고 소박한 인장이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범죄사건은 90%이상이 지문수사로부터 진행돼요. 그래서 일단 지문만 채취됐다 하면 전국에서 다 보내옵니다.』 김경장이 지문전송기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80년5월 미국에서 생산된 지문전송기가 국내에 저음 도입되면서부터.
80년11월 전국으로 확산, 현재 전국적으로 수신기 9대와 송신기 13대를 거느린 사령탑이 됐다.
변사자의 지문, 또는 범죄현장에 남은 지문 등의 지문자료와 사진 및 도면자료, 수배사진자료, 그리고 작전·경호 등의 지도자료를 접수하고 요구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문서의 경우 3분이면 도착하나 고도의 정밀을 요하는 지문의 경우 6분이 걸린다.
정확한 지문이 채취됐을 경우 20분 이내, 복잡할 경우에는 40분 내외에 신원을 밝혀낸다고.
『어쩌다 지문전송상태가 고르지 못해 줄이 간 것이 나올 때도 있어요. 이런 때는 상태가 양호한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수신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껏 전송기상태가 나빠 지문확인이 어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의 충실한 부하(?)를 자랑한다.
그가 맡고있는 일은 하루평균 10여건 정도. 지문·사건사진 등 수사에 관한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업무가 많으면 사회가 그만큼 어지럽다는 반증이 돼 일 욕심을 부릴수도 없다』면서 웃는다.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로 가출한 사람의 신원을 지문대조를 통해 확인, 애타게 찾고있던 가족에게 연계할 때가 가장 기분 좋은 일이라고.
업무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최근 한국을 방문한 방현초 대만경찰국장일행이 국립과학구사연구원에 들렀을 때 원용구 부산경찰국장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과 「환영」이란 글을 전송기로 보내자 이를 받아본 방대만경찰국장이 「과연 한국은 과학수사의 나라」라고 칭찬하며 지문전송기가 얼마냐고 묻기까지 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그러나 79년의 한 강력사건의 경우처럼 1개밖에 남지 않은 지문이 그나마 상태가 불량해 1주일간 밤을 새웠어도 신원확인을 못했던 그런 일들이 안타까운 기억들이라고.
대구교육대학 2학년 때 인생의 뒷면에 깃든 희노애락을 가식없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학교를 중퇴하고 72년5월 경찰에 투신한 그는 시경민원봉사실→중부경잘서소년계→동대문경찰서보안과→파출소근무→치안본부경무과를 거쳐 76년12월 이곳으로 왔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경찰직을 추천하고 싶다』는 그는 「여자가 하필이면 경찰이냐」는 사회통념이 하루빨리 시정돼 일본·영국처럼 여성경찰관이 인기직종이 됐으면 좋겠다고.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그는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미혼의 변을 들려준다.
김명암씨(60·양복점경영)의 5자녀 중 외동딸로 볼링·수영이 취미인 그는 경찰생활에서 접한 많은 이야기들을 소재로 시집을 내는게 최대의 꿈이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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