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그는 이혼한 부모의 막내아들이었다. 엄마 밑에서 성장하며 아버지는 아예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내면에서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결코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는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경험을 물려주고 말았다. 그래도 아버지와 다른 점은 자신이 아들을 맡아 키운다는 거였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되뇌었지만 왜 아버지처럼 되었는지 그는 궁금해 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에 있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한다. 아버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한 계속 아버지 영향을 받는 셈이며 아버지처럼 살게 될 확률도 높아진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우선 아버지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든, 방기하는 아버지든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그것을 물려받았거나, 불행한 환경 속에서 왜곡되었을 것이다. 다소나마 아버지의 삶이 이해된다면 비로소 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된 셈이다.

 다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엄마 영향력 아래 자란 아들은 엄마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품은 남편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고스란히 아들 내면에 대물림된다. 한 아들은 내면에 있는 엄마 목소리를 제거하자 전과는 전혀 다른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오래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가 말했다. “이제는 엄마의 눈으로 아버지를 보지 않을 거예요.”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 아직도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해주기 바라는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좋은 아버지 환상을 투사하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양육자에 대한 기대나 실망이 없는 마음 상태에 도달해야 의존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청년은 깊은 성찰과 치유 과정을 거쳐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부모님께도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누구도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 대신 부모님이 달라지기를 소망하는 자신의 의존성을 알아차리는 쪽이 낫다. 그 모든 것을 끊어내야 비로소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내가 해결하고 너희에게 물려주지 않겠다. 가족의 어떤 과거도 너희 미래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겠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