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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우 결승골 '1분의 기적' … 축구는 남남북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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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입에 문 태극전사들은 행복했다. 이들은 ‘사상 최약체’라는 비아냥을 7경기 13골 무실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돌려줬다. 선수들 대부분이 화려한 이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단합된 힘으로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줬다. [인천=강정현 기자]

1분의 기적이 일어났다. 전광판 시계는 연장 후반 15분에 멎어 있었다. 최후의 오른쪽 코너킥 찬스. 이용재(23·나가사키)가 발을 갖다 댄 볼이 북한 골문으로 향했다. 북한 선수가 손까지 뻗으며 필사적으로 저지했고, 다른 선수가 몸을 던져 걷어냈다. 공은 오른쪽 골포스트 옆에 있던 ‘유일한 2부리거’ 임창우(22·대전)에게 흘렀다. 임창우는 회심의 오른발슛으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선수들은 모두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역대 최약체 팀이라 불렸다. 하지만 역대 가장 끈끈한 팀이었다. 한국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2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극적 반전 드라마를 썼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이어 28년 만의 우승이고 70년·78년·86년에 이어 네 번째 우승이다.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북한과 연장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우승한 한국은 단독 우승을 차지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축구는 최근 아시아 맹주의 위용을 잃어버렸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2패로 탈락했다. 9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역대 최저인 63위까지 추락했다. 아시안컵 역시 반세기가 넘는 54년째 무관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자존심 회복의 서막을 열었다.

남자 축구 아시안게임 대표 이종호(왼쪽)가 북한과의 결승전 도중 넘어진 북한 골키퍼 이명국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다. [인천=양광삼 기자]

 이광종호는 2002년 이동국(35·전북), 2006년 이천수(33·인천), 2010년 박주영(29·알샤밥)처럼 수퍼스타가 없었다. 동메달 신화를 쓴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과 비교해 기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박주호(27·마인츠)는 결승을 앞두고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우리 팀은 아주 끈끈한 결속력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들려준 일화도 일맥상통한다. 김신욱(26·울산)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종아리를 다쳐 줄곧 결장했다. 대신 원톱 공격수를 맡은 이용재는 결정적 찬스를 여러 차례 날려 마음고생이 심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 식당 로비에서 김신욱이 이용재에게 등지는 플레이를 반복해서 가르쳐줬다. 이용재도 실전처럼 열심히 따라 했다”며 “멀리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광종 감독은 ‘신욱아, 점프는 너무 높이 하지 말아라’고 말해줬다”고 귀띔했다.

 ‘주장’ 장현수(23·광저우 부리)는 일본과 8강전이 생일이었고, 골키퍼 김승규(24·울산)는 태국과 4강전이 생일이었다. 동료들은 라커룸에서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줬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주어지는 병역 혜택은 잊었다. 김신욱은 후배들에게 “개인의 영광이 아닌 대한민국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뛰자”고 말해줬다. 팀 미팅 때 ‘군대’는 금기어였다. 장현수는 “군대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모두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북한 남녀 축구대표팀은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원수님의 사랑이 힘의 원천”이라며 사상으로 중무장했다. 북한 여자팀은 전날 컴퓨터 게임 같은 조직력을 선보이며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

 이번 대회 토너먼트는 이틀 간격으로 치러졌다. 남북 모두 체력 부담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한국은 경기 내내 공세를 퍼부었고, 북한은 역습을 노렸다. 북한은 후반 28분 박광용의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결국 득점 없이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 후반 3분 김신욱까지 교체 출전했다. 10분 남짓 시간이라도 부상 투혼을 불살랐다. 마지막 코너킥. 김신욱에게 눈이 쏠린 사이 극적 결승골이 터졌다.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의 요아힘 뢰프(54) 감독은 현역 시절 차범근(61)의 백업 공격수였다. 선수 이광종도 김주성(48)·황보관(49)처럼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대표 경력도 98년 서울 올림픽 상비군이 전부다. 비주전의 설움을 잘 아는 이 감독은 이렇다 할 에이스 없이 2009년 17세 이하(U-17) 월드컵 8강, 2011 U-20 월드컵 16강, 2013 U-20 월드컵 8강에 이어 또다시 성과를 냈다.

  ‘이광종호’는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원팀(One Team)’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7경기에서 13골을 넣었고 무실점했다. ‘퍼펙트 골드’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이번 대회가 경평(京平)축구 부활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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