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만취한 동료 데려다주다 사고가 나면 손해 배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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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후 만취한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주다 동료가 다쳤다면 손해를 배상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 마용주)는 디지털방송업체에서 일했던 A(31·여)씨와 가족들이 직장동료였던 B(34)과장과 C(31)대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억15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 3월, 젊은 직원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이뤄진 회식이었다. 서울 사당동의 한 음식점에서 오후 7시쯤 시작한 회식은 밤 11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그때 당시 A씨는 이미 만취해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하던 상태였다. 이에 B과장과 C대리가 "A씨를 집에 바래다주겠다"며 나섰다. 이들은 만취한 A씨를 택시에 태워 집 근처 아파트에 내렸다. 이후 한명은 A씨를 업고, 한 명은 A씨의 가방을 든 채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A씨를 감당하지 못하고 몇차례 넘어지거나 주저앉았다. A씨의 얼굴과 머리가 난간 등에 긁히고 부딪혔지만 함께 술을 마셨던 B과장과 C대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들이 A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고 이에 놀란 가족들이 곧장 구급차를 불렀다. 진단 결과 A씨는 후두부 골절상과 경막성 뇌출혈 등 상해를 입은 것으로 나왔다. 이 상처로 A씨는 청각이 약해져 보청기를 껴야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A씨를 데려다주기로 한 이상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줄 신의칙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봤다. 이어 재판부는 "당시 다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있었던 점 등 A씨를 혼자 업고 가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떨어뜨려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사고를 당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되는 일에 나섰던 점, 직장 동료로서 호의를 베푼 것인 점 등을 감안해 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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