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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으로 빗물 닦는 육상 … 컨테이너서 대기한 역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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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8일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에 비가 내리자 자원봉사자들이 로고가 그려진 수건으로 트랙을 닦고 있다. 외신이 주목한 장면이었다. [인천 로이터=뉴시스]

인천 아시안게임이 갈수록 엉망이다.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지난 28일 육상경기가 열린 아시아드 주경기장. 경기 중 비가 쏟아져 트랙이 흠뻑 젖자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뛰어나와 수건으로 물을 닦았다. 2009년 이후 국제대회에서 바닥을 닦는 롤러 기계를 쓰는 게 보편화됐지만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영수)는 ‘인해전술’을 폈다. 조직위 관계자는 “아시안게임에는 그런 기계 쓸 일 없다”고 말했다.

 이날 야구장과 축구장이 있는 문학경기장 일대는 교통대란을 겪었다. 야구 결승전(약 2만7000명)과 남자축구 8강전(약 4만3000명)을 보기 위해 7만 여명이 모여든 것이다. 조직위가 한국이 출전하는 빅 매치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배정하는 바람에 제 시간에 입장하지 못한 팬들과 관계자들이 많았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개막한 지난 19일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건·사고가 터졌다. 스포츠 영웅을 들러리로 만든 개회식은 한류 콘서트장이 돼 버렸고, 배우 이영애 씨가 성화 점화자로 나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가 붙인 성화는 만 하루 만에 꺼졌다가 재점화됐다. 화장실에서 소변이 새고, 역도 선수들은 라커가 없어 컨테이너에서 대기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해프닝들은 외신을 타고 매일 보도되고 있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라는 아시안게임이 오히려 한국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해외 선수단과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해 홍콩 언론 원후이바오(文匯報)는 24일 “아시안게임인가, 아니면 한국판 전국체전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시안게임이 막장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막장 드라마의 단골 구성요소인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7년 전 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된 후 인천시장은 두 차례 바뀌었다. 안상수 전 시장이 무리하게 대회를 유치했고, 2010년 취임한 송영길 전 시장은 준비과정에서 효율화에 실패했다. 지난 7월 취임한 유정복 현 시장은 조직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전·현 시장의 시정 목표가 다른 가운데 조직위가 행정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유 시장은 “조직위는 아시안게임 끝나면 없어진다. 이제 인천시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예산은 2조5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넉넉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나라 망신을 당할 정도로 부족한 돈은 아니다. 그러나 예산의 80% 정도를 시설 비용으로 쓰면서 운영비용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 문학종합경기장이 있는데도 청라 신도시 인근에 주경기장을 짓는 등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행정이 이어졌다. 아시안게임을 위해 인천시는 1조23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인천시는 향후 15년간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인천시와 조직위는 준비기간 내내 엇박자를 냈다. 지방 공무원과 조직위에 파견된 계약직 직원들은 갈등구조에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정작 중요한 대회운영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회 초반 사격·펜싱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락에서 살모넬라균이 검출돼 해당 도시락을 전량 폐기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다른 도시락을 먹는 동안 선수는 식사를 거른 채 경기에 나서 한국 코칭스태프가 욕설을 하며 조직위에 따지기도 했다. 배드민턴이 열린 체육관 에어컨 바람이 경기에 영향을 줘 선수들이 곤혹스러워 했다. 경기장 정전으로 선수들이 훈련을 중단하고, 선수촌 엘리베이터가 멈춰 고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린 일도 있었다.

 조직위의 자원봉사자 교육·관리에도 문제가 많았다. 경기장 안내 등 기본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선수단과 취재진이 불편을 겪었다. 통역 등 핵심 요원들이 “처우가 약속과 다르다”며 대회 개막 전 대거 빠져나갔다. 선수들과 취재진을 수송하는 셔틀버스는 운행시간에 늦거나 아예 도착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지 못한 이들은 걸어서 경기장으로 향했고, 경찰 차량을 타기도 했다.

 경기장이나 선수촌에 취객이 난입하는 소동도 있었다. 남종현 대한유도회 회장은 입장권이 없는 지인들과 함께 경기장에 들어서다 저지당했고, 노경수 인천시의장은 운전기사의 AD 카드를 아들에게 주고 야구 결승전에 가려다 안전요원에게 막혔다. 두 사람은 똑같이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호통쳤다.

 흥행에서도 실패했다. 야구와 축구, 박태환 경기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관중석 10분의1도 채우기 어려웠다. 폐막식(4일)도 문제다. 전날까지 육상 경기가 열려 리허설도 하지 못하게 생겼다. 폐막식 입장권은 목표액(1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6억5300만원 어치만 팔린 상황이다.

인천=김식·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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