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금융거래 통보 실명법 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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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고액 금융거래의 국세청 통보, 유흥주점 및 골프장에서의 접대비 인정 제한 등 국세청이 지난 8일 내놓은 세정혁신 방안이 수정될 전망이다.

학계.재계 등 30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 세정혁신추진위원회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국세청이 각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쪽으로 후퇴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도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분식회계를 한 기업에 가산세를 물리겠다는 국세청 방침은 철회됐다.

세정혁신추진위원회는 지난 22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혁신안을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서 상당수 위원이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회사들이 개인의 고액 금융거래를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통보토록 하는 방안에 대해 상당수 위원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 참석자는"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으며 금융실명법을 훼손할 우려가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국세청은 "향후 공청회를 열고 연구기관에 용역을 주는 등 신중히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이 참석자는 밝혔다.

접대비 문제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재계측 위원들은 "수출상담 때 바이어들에게 골프와 술집 접대는 필연적"이라며 "더구나 소비가 위축되어 있는 시기에 이를 제한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 위원들은 "잘못된 기업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이용섭 국세청장은 "골프와 룸살롱을 예로 든 것일 뿐, 이 곳에서 쓴 비용을 모두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바이어에게 접대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접대비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 철저히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특정 업종에 대해서만 접대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법에 맞지 않고 접대비 지출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일단 접대비 한도를 축소하고 특정 업종에서의 접대비 인정 제한은 당분간 유예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분식회계 기업에 가산세를 물리는 방안에 대해 일부 위원들이 "가산세란 세금을 덜 냈거나 납기 기한을 어겼을 때 부과되는 것"이라며 "이익을 부풀린 회계분식에 대해 가산세를 물리는 것은 세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가산세를 물리는 방안은 추진하지 않겠다"며 "다만 회계분식을 통해 세금 혜택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정청구나 환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정선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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