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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오래된 도도함, 팔판동 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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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팔판동(八判洞)의 지명 유래

경복궁 과 삼청동 도로 한쪽 면이 감싸고 있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은 소격동·청운동과 접해 있다. 팔판(八判)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8명의 판서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주요 관아가 경복궁 남쪽에 있었으니 이곳에서 업무를 보던 관리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복궁 동북쪽 팔판동에 주거지를 두었다는 추측은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다.

삼청동 대로를 뒤로하고 열 발자국만 들어가면 과거와 현대가 묘하게 어우러진 고즈넉한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총리공관 건너편 팔판길이다. 오래된 단골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숨은 맛집과 가족 같은 유대감으로 천천히 느리게 걷는 삶을 추구하는 골목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팔판정육점’ 3대째 사장 이준용씨, 민어전문점 ‘병우네’의 정정우 사장, 슈(크림이 든 작은 빵) 전문점 ‘메종 드 슈’의 김혜림씨, 식빵 전문점 ‘밀크’의 차겨울 사장(왼쪽부터)

 1940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팔판정육점’은 이 팔판길의 터줏대감이다. 보기에는 영락없는 동네 정육점이지만 ‘하동관’ ‘우래옥’ 같은 서울 시내 내로라하는 식당들과 50년 넘게 거래하고 있는 곳이다.

 창업주인 이영근씨가 대대로 살던 팔판동에 정육점을 열고, 이것을 74년에 셋째 아들 이경수(67)씨가 ‘인수’했다. 돈 계산은 철저히 하자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게를 팔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처가에서 돈을 빌려 물건 값은 100% 다 드리고 가게 값은 시세의 절반 값으로 샀다. 처가의 빚을 갚기 위해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는 둘째 아들 이준용(42)씨가 합류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국제경영(MBA)을 전공하고 수천만원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대기업에 팔던 엘리트가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정육점을 지키게 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병치레를 크게 한 아버지는 어찌 될지 모르는 건강을 염려하게 됐다. 이준용씨는 “어려서부터 한 번도 형과 내게 큰 소리를 안 내셨던 친구 같은 아버지는 내게 우상이었다. 그런 분이 나이가 들고 힘들어하시니 자식 된 도리로 당연히 도와드려야 한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결정을 듣고 이준용씨의 어머니는 6개월을 울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기업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를 주겠다’는 말로 아내를 겨우 설득했다고 한다.

 씨름 선수처럼 몸이 크고 다부진 아버지 이경수씨는 팔판동에 숨어든 도둑도 여럿 잡았을 만큼 동네 일에 적극적이다.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 동네 잔치를 연다. 팔판정육점 고기를 아낌없이 내놓고 거리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날이다. 거리를 걷던 누구라도 환영이다. 동네 산책을 나왔던 이수성 전 총리가 잔치에 끼여 동네 사람들과 고기를 나눠 먹은 일도 있다. 팔판정육점 단골이 총리공관이고 성북동·평창동 저택들이니 유명 정치인과 기업 총수가 골목에 나타나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김황식 전 총리가 퇴임하기 며칠 전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내려 “그동안 맛있는 고기를 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김 총리는 며칠 전 추석에도 떡을 보내왔다.

 아버지 이경수씨는 골목길 젊은 사장들에겐 큰아버지 같은 존재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슈 전문점에 들러 ‘진열대에 있는 슈를 몽땅 싸달라’ 하고는 이것을 골목 이웃집들에 나눠주며 ‘이런 집이 새로 생겼다’고 소개한 적도 있다. 부끄럽고 잘 몰라서 가게 주인도 못하던 일을 대신 한 것이다.

 이준용씨 역시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씨는 “가업을 잇는다는 거창한 명분보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시는 모든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라며 “평소 ‘돈만 남기려는 장사는 오래 못 간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팔판길에 살고 있는 화가 이헌구(55)씨는 “이 동네서 ‘좀 살았다’ 하려면 30~40년지기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며 “오래된 토박이들 동네 특유의 ‘도도한’ 골목 정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반백의 이씨도 누구든 만나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눈이 오면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골목을 치우고, 짧은 바지 차림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젊은 여성이 거리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점잖게 타이르는 그런 정서 말이다. 땅값이 올라도 나고 자란 추억의 집을 팔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고 집을 고치는 것조차 싫어하는 이들도 있어 골목은 대부분 80~90년대의 수수한 풍경을 고수하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프렌치 레스토랑 ‘아따블르’ 오너셰프 김수미(47)씨는 이 골목 풍경을 망치기 싫어 세를 얻은 한옥집에 커다란 창 하나만 낸 채 들어왔다. 김씨는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번잡함도 싫어 11년간 셰프가 추천하는 ‘오늘의 메뉴’ 하나만 고집하며 테이블 6개로 철저한 예약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 ‘로쏘’의 전소영(48) 사장도 “당시 골목에는 건재상의 기왓장과 우유보급소의 초록색 플라스틱 상자가 길게 쌓여 있었다”고 기억했다. 직접 로스팅 하고 드립 커피만을 내놓는 전씨 역시 골목 풍경에 맞게 카페 앞에 입간판 대신 시골집 담벼락 밑에서나 볼 수 있는 화단을 가꾸고 나무와 풀을 심었다.

 총리공관이 코앞에 있고 청와대가 가까운 지리적 요건도 팔판길의 특별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양복을 차려입은 점잖은 손님들이 많은 풍경이다. 2007년에 문을 연 한정식집 ‘달항아리’는 된장찌개·들깨탕을 포함한 구수한 밥상 덕분에 청와대 정무수석과 경호원들의 단골집이 됐다. 정현옥(52) 사장은 “익숙한 얼굴들 때문에 밥값도 못 올린다”고 했다.

전라도에선 30㎝ 이상의 병어를 ‘덕자’라고 부른다

 민어와 덕자(몸통 길이가 30㎝ 이상인 병어)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병우네’ 역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정치인과 기업인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얼마 전에도 한화갑 전 의원이 들렀다. 정몽준 전 의원도 단골이다. 정정우(56) 사장은 “우리 집에서 국산이 아닌 건 참기름밖에 없다 ”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사람을 시켜 ‘전어밤젓’을 사갔다”며 손맛 자랑도 덧붙였다.

 오후 8시만 되면 골목이 캄캄해지는 것도 팔판길의 특징이다. 뜨내기 관광객보다 주변 화랑가 직원들과 청와대 직원들이 주로 찾는 곳이니 그들이 퇴근하면 동네 영업도 끝난다. MB 시절 건물 1, 2층이 꽉 찰 만큼 번성했던 ‘치맥(치킨+맥주)’ 집이 지난해 ‘윤창중 사건’으로 청와대 금주령이 떨어지면서 문을 닫고 이사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20년 전 문을 연 서울에서 손꼽히는 재즈 클럽 ‘라끌레’도 영업시간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다.

왼쪽 큐알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팔판길 풍경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는 삶을 추구하는 이 골목에도 최근 젊은 바람이 조용히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빵과 케이크를 파는 집이 5곳이나 들어섰다. 모두 20~30대 젊은 사장들이다. 테이블도 없이 테이크아웃을 콘셉트로 하지만 패기만큼은 대단하다. 집 앞에 써놓은 ‘이것이 슈다’ ‘식빵으로 대동단결’ 등의 홍보문구를 보면 웃음부터 나오지만 어느새 그 열정의 맛은 어떤 것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들 젊은 사장은 이 골목의 오래된 정서가 좋다고 했다. 올해 5월부터 잡화점 ‘마깡띤느’에 숍인숍으로 문을 연 슈 전문점 ‘메종 드 슈’ 김혜림(27)씨는 “처음 시작한 장사라 겁도 많이 나지만 동네 어른들이 오가며 친척들처럼 ‘잘되느냐’ 챙겨주는 골목 분위기가 따뜻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눈썰미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팔판길 집집마다 1~2인용 작은 벤치와 의자를 둔 것을 알 수 있다. 길 가던 나그네 누구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자리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형수·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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