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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옥포는 잠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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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철판을 자르는 굉음, 용접공들의 분주한 손놀림, 덜거덩거리며 각양각색의 철판을 나르는 지게차, 세계최고 높이(1백27m)를 자랑하는 골리앗 크레인에 매달린 철제구조물…. 21일 오후 거제도 옥포 대우조선 해양(DSME)의 선박건조 현장 모습이다.

옥포항과 장승포항 사이 1백34만평 부지에 까마득히 펼쳐진 각종 공장과 사무실, 선박건조도크 등 어디에도 바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상업용 선박을 제조하는 1도크에서 건조 중인 30만t급 유조선은 높이만 31m에 폭은 58m, 길이는 3백32m로 갑판이 축구장보다 크다.

다음달 17일 진수(進水)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갑판에는 20여명이 나사를 조이고 용접을 하느라 분주했다.

진수 후 이 유조선은 3개월 정도 시험항해를 거쳐 선주사인 그리스 크리스텐에 인도될 예정이다. 건조과정이 대부분 자동화돼 철판을 자르기 시작한 지 9개월여 만에 진수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기계의장부 최경재(39)씨는 "요즘 조선 쪽은 일감이 너무 많아 잔업하기 일쑤다"며 "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회사에 근무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바로 옆 도크에도 호주의 NWS사등 6개 선박사가 발주한 13만CBU(입방m)급 LNG선 마무리공사로 바빴다. LNG선의 경우 첨단기술을 요구해 수주에서 인도까지 2년여가 소요된다.

선실공사 도중 휴식을 취하던 선실생산부 손을권(44)씨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을 하는데 세금을 떼고 나면 손에 쥔 월급이 많지 않아 약간 불만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부분 자동화된 강판절단공장 직원 2백30여명은 연 무휴로 12시간씩 2교대를 하고 있을 정도로 바빴고, 4개의 대규모 공장에서는 하루 20~30개의 3백t급 각종 철제구조물(블록)을 만들어 건조 중인 32척의 대형선박에서 조립하기 위해 이동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다른 업종의 회사들은 일감이 없어 걱정이지만 거제도 대우 조선소는 일이 많아 탈이다. 세계 조선업계는 설비능력이 최고수주량(3천만t)보다 5백만t이나 많아 공급과잉이지만 기술력이 워낙 뛰어나 주문이 밀려서다.

2001년 36억달러를 수주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2억달러를 수주했고 올해는 28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미 절반이 넘는 13억4백만달러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세계 2위 수주량이다.

박종기 홍보실장은 "현재 수주량만으로도 앞으로 2년반 동안 작업물량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수주가 잘 되다 보니 매출도 늘어 지난해 3조3억원을 올렸다. 경상이익도 3천5백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3조8천억원에 4천억원 가량의 경상이익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1981년 조선소를 건립한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 유동성 위기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채권은행 출자전환으로 독립회사로 출범했으며 2001년 8월에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3개월 뒤인 12월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회사이름을 '대우조선해양'으로 바꿨다.

현재는 퇴직급여충당금과 대손충당금 등을 제외한 부채비율(차입금 기준)이 44.1%인 초우량기업으로 변모했다. 지금까지 이 회사가 건조한 선박만 5백30여척.

대우의 이 같은 고공비행 비결은 다름아닌 세계정상급 기술력과 마케팅 실력 때문. 15년 전 독자적인 설계기술개발에 성공한 대우는 현재 기술자립도가 1백%에 가깝다.

3년여 전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LNG선 중 가스보관탱크가 원형이 아닌 각형(멤브레인형)이 표준화될 것을 예상하고 관련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한 게 주효해 현재 멤브레인형 선박건조기술은 세계 최정상이다.

멤브레인형은 운송과정에서 액화가스 손실률이 적어 현재 대부분의 선주사들이 선호하고 있다. LNG선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41%로 1위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인력은 전직원의 10%가 넘는 1천2백여명.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70여명의 마케팅인력이 수주활동을 벌이는데 고객의 신뢰를 쌓는 데 가장 역점을 둔다.

즉 아무리 까다로운 선주들의 주문에도 '노'라는 말은 하지 않고, 주문내용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소화해 낸다. 이 때문에 한번 주문한 선주가 다시 주문하는 재수주 회귀율이 97%에 달할 정도.

일이 넘치다 보니 오히려 인력부족이 심각한 문제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 수주가 당초 목표보다 20% 이상 초과달성될 예정이어서 올해 8백여명의 현장인력을 신규채용할 계획인데 3D업종이란 인식이 강해 지원자가 몰릴지 걱정이다.

지난해 협력업체들이 부산에서 채용박람회를 열었는데 관심을 보인 젊은이는 10명도 되지 않았다. 신규인력이 적다 보니 1만4백여명에 이르는 전직원 평균연령이 42세에 달한다.

중국의 도전도 거세다. 아직 모든 기술력에서 10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그 간격은 갈수록 좁혀질 전망이다.

김경일 경영담당상무는 "앞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와 마케팅,그리고 첨단선박은 대우가 맡고 나머지는 중국 등 노임이 싼 외국에서 아웃소싱하는 전략을 구사해 세계 최정상의 선박건조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거제=최형규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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