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 "독일 반성 없었으면 유럽 통합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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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통합의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역내 국가 간 역사적 상흔을 치유할 필요성입니다. 독일의 진정한 참회와 실질적 조치가 없었더라면 유럽 통합은 물론 독일 통일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8일 역내 평화와 통합의 필수 조건은 역사 문제 해결임을 다시 강조했다. 일본이라고 콕 짚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역사 왜곡 도발을 일삼는 일본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윤 장관은 이날 국립외교원과 유럽연합 안보연구소(EUISS)가 공동주최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 관련 한-EU 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은 주변국의 의구심과 우려를 해소하려는 독일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브란트 총리가 1970년 바르샤바의 2차대전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은 일화를 소개하며 “이 위대한 침묵은 어떤 화려한 수사보다도 효과적으로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었다. 이는 과거 피해국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고 했다.

또 “동북아도 이 경험을 배워야 한다. 우리로서는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려는 시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동북아 평화협력 질서 구축을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과 역내 갈등의 근원을 영원히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윤 장관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소개하며 “협력과 대화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협력이 보다 용이한 비전통 연성 안보 의제에서 출발해 전통 안보 의제로 협력 분야를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연성 안보 의제로는 원자력 안전, 환경, 재난구호, 에너지 안보 등을 예로 들었다.

또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둔 개방적 구상이며, 기존의 여러 협력 체제와도 상호 보완 관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양자관계의 복잡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동북아 역내 및 역외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역대 최상의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삼각협력을 중심으로 역내 다양한 소다자 협력을 적극 선도하고 있는데, 최근 산고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10개월만에 한중일 고위급 회의를 개최한 것이 그런 사례”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윤 장관은 “한국은 정체돼 있는 외교장관회의 및 정상회의 재개를 위해 이번 회의 개최를 주도했다”고 밝혀 한중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회의는 외교부와 유럽연합 대외관계청(EEAS) 후원으로 열렸으며, 유럽 지역 국제관계·안보 전문가들과 20여개 주한 EU 회원국 대사들을 비롯한 전현직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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