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태권도 8단 딴 첫 외국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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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제 삶 자체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세계에 주신 한국에 감사드려요."

금발에 푸른 눈, 단단한 체구, 온화한 미소. 외국여성으로서 첫 태권도 8단에 오른 브렌다 셀(50)은 종주국에 대한 감사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19일 국기원에서 승단 심사를 받은 셀은 20일 최종심의를 통과해 8단을 받았다. 한국인 여성 8단은 박지연(64.1992년 승단)씨 등 세 명이 있지만 외국인으론 셀이 처음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그는 이번 심사를 위해 남편 에드워드(64), 아들 로비(20), 남동생 마크 베이글리(36)와 함께 16일 한국에 왔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남편은 2001년 외국인 최초로 9단에 올라 화제가 됐었다. 장남 론은 6단, 차남 로비는 4단, 남동생은 6단으로,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태권도 일가다.

셀에겐 태권도와 관련해 '첫'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1977년 첫 여성 태권도 국제심판이 됐고, 8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1회 여성세계선수권에서 첫 심판을 봤다. 97년 외국 여성으론 첫 7단에 올랐다.

태권도를 처음 접한 건 열네 살 때.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는 말괄량이였어요. 이사 간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려고 태권도장에 다니게 됐지요."

여자 수련생이 드문 시절이었지만 그는 "한번 세운 목표는 끝을 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다. 문제는 태권도엔 '끝'이 없다는 것. "2년 만에 검은 띠를 받고 뛸 듯이 기뻤죠. 그런데 태권도는 계속 단을 높여가는 수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태권도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75년 셀은 도장 사범이었던 에드워드와 결혼했고, 이들은 태권도장 '청도관'을 운영하면서 79년 플로리다주 청도관 태권도협회를 창설했다.

현재 셀이 협회장을, 에드워드가 협회 관장을 맡고 있는 미국 청도관태권도협회는 산하 도장이 12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이 길러낸 태권도인은 30여 년 간 35만여 명. 73년에 둘이 함께 쓴 교본 '태권도의 힘(Forces of Taekwondo)'은 현재 14판까지 찍었다.

셀은 이번 승단 심사를 위해 지난 1년간 매일 6~8시간 품새를 익히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국기원은 8단에서 9단이 되기까지 9년의 의무 수련기간을 둔다. 셀은 "2014년까지 계속 훈련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신라호텔에 머물고 있는 셀 일가는 22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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