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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에 묻혀 산수화를 음미한다" 정한모<국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요즘 서울 성북동의 경관좋은 간송미술관에서는 아주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보배와 같은 한 장을 펼친 진경산수화전이 바로 그것이다.
15∼17세기에 안견 강희안 김시 이경윤 이암 조속 이고 이정 이징 이숭효형제 김명국 윤공재와 같은 명화가가 많이 배출되었지만 그 후 정겸재와 같은 진경산수의 명인과 그 정신을 계승하여 다시 독창적인 우리 산수화의 높은 경지를 보인 단원과 같은 거장이 없었다면 우리 그림은 매우 적적했을 것이다.
겸재에서 대담하게 집약된 우리산천의 생동감 있고 씩씩한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단원에서 그것이 희화적으로 승화된 아름다움을 본다. 이번 전시회에는 겸재 중년의 때론 재미있는 희화적이고 장식적인 변형을 섞어 가면서 활달 대담한 구성과 바람이 이는 듯한 힘찬 필치가 있는가 하면, 겸재 특유의 피법(준법)과 고식의 준법으로 이상적인 정경을 나타낸 것도 있으며, 노숙하고 밀도있는 필치와 구심으로 집약된 아름다움이 있으며, 우리 자연을 오래 관조하고 깊은 사랑과 노숙한 필치로 그려낸 담담한 청록으로 우리 산하의 정경을 그린 반가운 그림도 있다.
단원은 우리 풍속화의 정형을 이룩한 공도 크지만 그는 산수화에서 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그의 산수화의 신필을 볼 기회가 매우 드문데, 이번에 10여폭의 금강산도를 비롯한 많은 진경산수가 선보여 그 흐ant함을 무어라 이룰 수 없다.
금강산도에서 단원 특유의 암벽과 산수의 표현이 가로세로 엇비슷이 마음대로 변형되면서 길고 짧게 삐치고 그었으며 때로 부벽준(부벽준)같지만 훨씬 유연하게 북북 길게 그어 내린 독특한 필법이 섞여 단원 산수화의 천재적 준법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 같다.
이밖에도 소폭이지만 심현제의 높은 인격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달관한 필치로 그려낸 진경산수화가 있고, 이념산수의 준법이 섞였지만 재기에 넘치는 이인문의 해금강도가 있어 우리를 다시 한번 즐겁고 놀라게 한다.
진경과 이념산수를 떠난 듯 문인제의 드높은 경치를 나타낸 이인제의 한 폭 산수에서 그의 높은 학문과 절개와 천재성에 감탄과 경의를 표하게 되며 이기야의 재치와 김진재의 소탈한 산수를 본다.
누구든지 거기 가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참으로 깊은 감명과 자부심과 긍지를 배우지 아니 하려는가.
우리에게 오히려 해독이 되는 사슬과 같은 전시회가 때론 대문짝 같이 지상에 보도되어 구름같이 인파가 밀려드는데, 이번 뜻있는 전시장은 너무 텅비어 있어서 잠시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11월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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