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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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61년 벽두 서울의 각 신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여인 12명의 명단이 실렸다.
미국 뉴욕의 일급 디자이너들과 패션잡지 편집자들로 구성된 쿠처그룹에 의해 매년 연초 발표되는 베스트드레서 명단이 61년에 와서 유독 한국의 신문마다 대서특필된 것은 12명 중에서도 1등으로 뽑힌 영광의 인물이 바로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서 취임을 며칠 앞둔「존·F·케네디」의 젊은부인 「재클린」 여사였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그녀가 며칠후인 1월20일이면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백악관의 안주인이 될 예정이아니었던들 과연 세계적인 베스트드레서에 더욱 1등으로 뽑힐 수 있었을까하는 반문들을 12명의 명단이 든 외신기사와 함께 싣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베스트드레서란 말에 익숙하고 대개어떤 어떤 사람들이 선정대상이라는 것쯤 잘알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교류가 활발치 못했던 당시의 우리에게는 이베스트드레서 선정 행사조차 잘사는 나라의 할일 없는 이들의 호사취미로 밖에는 여겨지질 않았다.
아뭏든 세개에서 제일 옷 잘 입는 여성으로 뽑힌다는 것은 무슨무슨 여사, 누구누구 부인 하는 식으로 그 자신이 유명하거나 유명인사를 남편으로 둔 부인들 중에서 뽑히는 것이 정석이었다.
국제사회에서 명성을 날리는 상류 사교계 여성들이 대상이므로 이미 본인들의 네임밸류만으로도 뉴스 가치가 대단했다.
「재클린」의 경우도 이런 의미에서의 유명도는 충분했지만 「캐네디」가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설 때부터 신문에 오르내린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얼굴이 눈과 눈사이가 지나치게 떨어져 있어서 (짓궂은 신문에서는 마라콘코스처럼 원거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보편적인 미인형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이견이 분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몇년동안 미국에서 미인이라고 하면 엇비슷하게나마 「재키」 비슷하게 보이는 여자들일 것이다』라고 한 뉴욕의 한 패션잡지 편집장의 예언이 미국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가 막히게 들어맞을줄은 당시에는 누구도 예촉하지 못한 일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도 「재클린」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나 옷입는 취향을 그대로 본뜨려는 열렬한 추종자들이 흔히 눈에 뛸릴만큼 이른바 「재키 스타일」은 대유행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재키」영향권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61년 이후 수년동안 서울에서도「재클린」의 이름은 패션, 모드와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가장 멋진 것, 모던한 것, 세련된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다.
미국와 역대 퍼스트레이디들의 점잖고 우아한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과는 풍기는 첫인상부터 이질적인, 바람에 불린듯 부풀하고 자연스런 「재클린」특유의 헤어스타일이 서울의 미장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머리형이 되기 시작한 것도이 무렵부터의 일.
『퍼스트레이디가 국산품을 애용하지 않고 값비싼 프랑스제 옷만입는다』고 서민층 미국인들의 애국적인(?) 불평거리가 되었던 「재클린」의 옷 입음새는 확실히 베스트드레서로 선정되기에 충분하고 뛰어난 것이어서 미국여성지에 실린 사진들은 그대로 패션 화보라해도 손색이 없었다.
센스있는 서울의 멋장이들이 이런 사진들을 들고 명동의 유명양장점을 찾아와 디자이너와 자신의 의상 스타일을 의논하는 모습은 어느 의미에서 한국 여성들이 세계패션과 호흡을 같이 하기 시작한 고무적인 증거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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