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딸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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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빠 혼자 어머니 모시기에 힘들겠다』는 딸애의 편지를 받았다.
4남1녀의 맏이한테 시집간 큰 딸애는 성장한 시동생들이 시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이것저것 때맞춰 흡족한 선물도 해드리는 걸 보니 아들 혼자뿐인 오빠가 안됐던 모양이다.
오빠와 동생과 셋이서 단출하게 자라난 외로움과 오빠 혼자 애쓰며 살림꾸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한 눈치다.
자랄 때는 나이 터울이 적어서인지 토닥토닥 싸우기도 하고 앙앙 울기도 하더니 하나둘 짝을 찾아 두 딸애가 모두 어미 곁을 떠나고 나니 내가 늙는 만큼 커가는 두 손자녀석과 아들 내외가 남았다.
큰딸은 멀리 강릉에 있는 탓에 일년에 두어번 만날 뿐이지만 작은애는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이면 족한 거리에 살건만 제가 찾아오기 전엔 시집살이하고 있는 아이를 선뜻 오라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항상 그리워하며 살아야하는 것을 생각하면 늘 섭섭한 마음이 바람처럼 가슴에 괴곤 한다.
그러나 닷새가 멀다고 날아드는 큰 딸애게 편지는 매일 번잡스럽게 할미 옆에서 지내는 두 손자녀석들 만큼이나 위안이 된다.
큰 딸애는 『전화요금이 비싸 잠깐 엄마 목소리를 듣고싶어도 참는다』며 대신 편지를 보내는 것인데 두 아이 커가는 얘기, 자기 남편과 시부모님 근황을 옆에 앉아 속삭이듯 상세히도 들려준다.
연애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지금의 사위에게 편지쓰는걸 보곤 쯧쯧 혀를 찼더니 그때의 정성이 출가한지 7년이 넘도록 어미한테 이어질줄 알았으면 잦은 핀잔은 말걸, 후회가 봉투를 뜯을 때마다 일렁인다.
큰애 거쳐 작은애마저 출가하던 날, 잠들기 전 불꺼진 그 아이들 방에 앉아 두놈 모두 아들이었으면 하고 참 많이도 섭섭했었는데 모두 쓸데없는 욕심이었나 보다.
이젠 나이 삼십줄이 넘어서 제 오라비 외로운 걱정들도 해줄 줄 알고 우체부아저씨가 힘들어할 만큼 철 찾아 옥수수나 잘 마른 버섯도 보내오는가 하면, 저희 올케 밑반찬거리 생겼다고 좋아하는 명태포도 드문드문 보내오니 속은 넓을지언정 겉으론 무심한 아들 못지 않은 것 같다.
성큼 다가오는 가을날 같은 큰 딸애의 편지가 기다려진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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