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교사의 죽음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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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상을 손꼽으라면 대부분 국민학교 시절의 스승을 들것이다.
어릴 때의 스승은 그만큼 자상하고 따뜻하며 위대하다. 맑고 깨끗한 정서에 스며든 이 같은 「스승의 자국」은 평생 가슴속에 남아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최근 이 같은 스승의 모습을 다시 분명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잊었던 자아를 발견하는 커다란 감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여교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일 수 없었다.
어린 제자들을 대신해 3층 교실 밖 유리창을 닦다 떨어진 신영순 교사는 안타깝게도 끝내 숨지고 말았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밤새 병상을 지키던 어린 제자들은 꺼져 가는 스승의 마지막 불꽃을 붙들려고 몸부림쳤다.
신 교사의 죽음은 비단 성수국교 5학년4반 어린이들만의 비극은 아니다. 우리 나라 교육헌장에서는 어디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비극이라는데 더욱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현재 교육당국은 각 국교에 「2층 이상의 교실 밖 유리창 청소는 학생들에게 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학생들이 닦지 않으면 선생님이 닦아야한다. 유리창청소를 고용원들에게 맡길 만큼 여유를 갖춘 학교는 거의 없다.
신 교사가 숨진 성수국교만해도 그렇다. 73학급이나 되는 큰 학교에 고용원이라곤 단지 4명뿐.
유리창 청소는 엄두도 못 내고 건물이나 책상·의자를 수리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는데도 일손이 부족한 형편이다.
같은 교사라도 여교사는 특히 고달프다. 흔히들 여교사를 가리켜 「여교사 3역」이라고 일컫는다. 기혼여교사는 집에서는 주부, 아내요, 학교에서는 스승이란 3가지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 같은 기혼여교사가 서울시내 국교교사의 40%가 넘는 6천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모두 고된 업무 속에서도 어린 학생들을 자기 자녀처럼 여기고 궂은일도 서슴없이 해내야 한다.
『지금도 그런 스승이 있었던가?』
신 교사에 관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반문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세태는 각박해졌고 「훌륭한 교사상」은 깨져있었던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신 교사의 죽음을 보고 사람들은 새삼 우리주위에 아직도 많은 「모범교사」가 있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신 교사와 같은 훌륭한 스승이 남아있는 한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아름다운 스승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 교사의 죽음은 「하나의 죽음」이 아닌 것이다.
신영순 교사의 명복을 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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