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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 애플 → 삼성 다음은 … ‘웨어러블’이 게임 체인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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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18면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을 향해 스케이트를 탄다. (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 세계 아이스하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캐나다의 웨인 그레츠키(53)가 남긴 말이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포스트 스마트폰’ 시장을 잡아라 … 공룡들의 ‘IT 대전’

이 말을 자주 인용한 이는 바로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였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의 클로징 멘트도 바로 이 문구였다. 통화·문자·카메라 기능에 머물던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당장 정보기술(IT)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이폰은 퍽이 갈 길목을 차지하고 내놓은 제품”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7년. 스마트폰은 한해 400조원 시장으로 커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하며 등장했던 텔레비전도 생산된 지 100년이 넘은 지난해가 돼서야 한 해 110조원 시장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보급된 디바이스’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스마트폰 시장도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2007년 1억1970만대에서 올해 12억10만대로 7년 만에 10배로 커졌지만 성장률은 매년 둔화하고 있다. 2020년 시장 규모는 16억5350만대로 향후 6년간 성장률이 37.8%에 머물 전망이다. 스마트폰이라는 퍽이 있는 곳에는 이미 삼성·애플·LG 외에 소니·샤오미·화웨이·레노버 등 수많은 선수가 북적이고 있다. 대만과 인도의 후발 기업들도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제 퍽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거대 IT기업들은 어느 길목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인가. 전문가들은 차기 전장(戰場)으로 ‘웨어러블(wearable)’을 꼽고 있다.

“중국이 못 쫓아올 제품 만들 때”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4’는 웨어러블 기술 경연장이 됐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기어S’는 스마트폰 없이 통화할 수 있도록 3세대(3G) 이동통신과 와이파이를 탑재했다.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기능을 갖추면서 ‘컴패니언 디바이스(스마트폰과 함께 쓰는 기기)’의 한계를 벗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면 위에서 손동작을 취하면 알림판이나 응용 프로그램을 불러올 수 있고 나이키가 만든 운동관리 프로그램 ‘나이키 플러스’를 통해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LG전자가 공개한 G워치R은 세계 최초로 원형 디자인을 적용해 시계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음성 인식 기반의 구글 나우(Google Now) 서비스를 제공해 별도의 화면 조작 없이 음성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일정 검색, 메일 관리 등을 대화형 명령으로 수행할 수 있다. 삼성과 LG는 제품 출시시기를 10월로 확정하고 정면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기술력으로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했으나 혁신의 강도가 낮아지면서 기술력 경쟁이 아닌 인건비 경쟁이 됐다”며 “거대 내수시장과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중국을 따돌리려면 ‘게임 체인저’가 될 제품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따라오는데 몇 년 걸릴 웨어러블 제품으로 시장 판도를 바꿔야 할 때라는 얘기다. IT 전문가인 박용후 피와이에이치대표는 “스마트폰도 개인용 컴퓨터(PC)처럼 혁신의 동력이 사라지면 중국에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며 “위기의 징후를 보인지 불과 2년여 만에 무너졌던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국내 제조사들은 웨어러블 기기로 혁신의 강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몰락한 소니도 웨어러블 시장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소니는 올해 IFA에서 전시장 중앙에 ‘스마트 워치3’를 배치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4GB 메모리가 내장된 ‘스마트 워치3’는 사용자의 최근 활동을 축적해 향후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밴드 톡’은 곡선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손을 쓰지 않고 통화가 가능하다.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총동원해 웨어러블 시장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며 “스마트폰 시장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력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젠 탑재로 OS는 3파전 양상
국제 전시회에 참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제품을 공개해온 애플은 9일(현지시간) 미국 쿠퍼티노의 플린트 센터에서 ‘애플 워치’를 공개했다. 메시지가 오면 사용자의 손목을 두드려 알려주는 기능, 광학 센서로 심박동을 측정하는 기능 등을 갖췄다. 측면에 달린 나사모양의 ‘디지털 크라운’을 돌려 화면을 키우거나 줄이고,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애플 워치는 2015년 상반기에 출시될 예정인데 350달러 안팎에서 가격이 책정될 전망이다.

웨어러블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운영체제(OS)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삼성은 기어S에 자체 개발한 OS ‘타이젠’을 탑재했다. 스마트폰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채택했던 것과 달리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에 나선 것이다. 이번 IFA에서 공개된 스마트워치는 삼성의 기어S를 제외하고 모두 구글 안드로이드 웨어가 적용됐다. 올 2분기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타이젠은 47.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해 2위 구글 안드로이드 웨어(28.6%)를 뛰어넘고 왕좌에 올랐다. 삼성의 기어 시리즈가 스마트워치 시장을 선점한 덕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OS의 70% 이상을 안드로이드가 장악하고 있어 안드로이드 폰과 기능이 호환되는 웨어러블 제품이 많아질수록, 갤럭시 스마트폰에만 연동하는 타이젠은 힘겨운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2017년 420억 달러 시장 예상
IT 전문가들은 ‘전에 없던 기기’였던 스마트폰에 비해 웨어러블 기기의 혁신 강도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서비스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웨어러블은 패션, 헬스 케어,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이번 IFA에서는 ‘헬스케어’와의 접목이 눈에 띄었다. 기어S의 경우 단순히 만보계와 같은 운동량 체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맞춤형 기능이 추가됐다. 예컨대 현재의 운동량이 심장 부하에 미치는 정도부터 체중을 일정 수준까지 줄이기 위한 운동량, 몸이 부실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운동량 등을 제시한다. 스마트워치3의 경우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면 피부상태 정보 제공과 함께 관리 조언을 해준다. ‘피부 나이(skin age)’부터 수분과 지성(기름기) 정도를 알려주고 ‘수분을 보충할 것’ 같은 제안을 한다.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웨어러블이 신체에 접촉하는 기기이고 개발 초기 단계이다 보니 헬스케어 쪽에 아이디어가 집중됐다”며 “앞으로 소비자의 생활 습관을 장악하는 기능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성장 여부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금융종합그룹 크레디트스위스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웨어러블 기기 시장은 2017년 4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생산량도 2018년 1억7100만대로 2013년 생산량의 12배에 달할 전망이다.

웨인 그레츠키는 이런 말도 남겼다. “슈팅이 없다면 득점은 100% 불가능하다”.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IT 공룡들이 웨어러블 영역에서 일제히 도전을 시작했다. 누가 최후의 승자로 기록될 것인가. IT 전사(戰史)의 새로운 페이지에 첫 줄이 쓰이기 시작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a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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