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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웹툰 성공 비결요? '실패를 허하라'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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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주방이 있다. 이 곳에선 소금을 ‘소금소금’거리며 뿌리고 계량스푼 대신 ‘아빠숟갈’로 간장을 뜬다. 빙수기계가 없어 감자칼로 얼음을 긁어내고, 그 감자칼로 양배추를 썰어 돈까스 옆에 놓는다. 손가는대로 요리법을 소개하는 웹툰 ‘역전! 야매요리’에서 작가 정다정(23)씨가 그린 주방의 풍경이다. ‘야매’(정해진 방법이나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의 속어)라는 제목처럼 정식으로 배운 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따라하기 쉽다. 지난달 29일 2년 9개월간의 인터넷 연재를 마친 그를 최근 만났다.

2011년 12월 첫 연재 당시 그는 만화를 한번도 그려본 적 없었던 재수생이었다. 부산외고 재학 중 아버지의 연수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했다. 정씨의 부모는 그가 국내 대학의 국제학부에 들어가 국제기구 공무원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정해준 길을 따르기 싫었다. “내가 뭘 배우고 싶은지 모르면서 수능 성적에 맞춰 무턱대고 입학하긴 싫다”고 했다.

마침 그가 취미로 시작한 요리 블로그를 눈여겨 본 네이버 웹툰 관계자가 연재를 제안했다. 정씨는 “원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식당에 가서 먹어봐 평가하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초보 만화가의 웹툰 연재가 시작됐다.

요리도, 만화도 잘 몰랐지만 그의 웹툰은 인기를 끌었다. 평균 조회수가 1만 건에 달했다. 회원수 1만8000여 명의 팬카페도 생겼다.

정씨의 요리법 특징은 꾸밈이 없다는 점이다. 시루떡을 쪘는데 찹쌀가루가 덜 익으면 그냥 팬케이크으로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보통 가정에서 요리하는 방식과 다른 것도 없다. 그래서 오븐이 없는 가정이 더 많아서 오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만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는 이유다.

정씨는 “만화를 통해 ‘실패를 허(許)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부담이 없는 요리법이라서 더 사랑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또 “부모님 뜻대로 살지는 않았지만 절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 요리하는 모습만 봐도 한숨을 짓던 정씨 부모는 이제 남몰래 부엌을 깨끗하게 닦아 놓을 정도로 그를 돕는다.

“정해진 나이에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린 일인지가 더 중요해요. 그럴려면 늘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고민을 해야해요.”

정씨는 다음 목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하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가운데서 찾고 있다. 만화에 나온 음식들을 실제 만들어 파는 푸드트럭도 생각 중이다. 조리 과정을 촬영해 유튜브에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올릴 계획도 있다. 한국 요리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포부에서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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