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영양|입맛 잃은 어린이 (4)|전세열 <한강 성심 병원 영양 화학 연구 실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7세의 딸과 5세짜리 아들을 가진 30대의 주부가 최근 아이들의 식사 문제로 찾아온 일이 있다.
아파트에 살며, 남편은 큰 기업의 중견 사원으로 애들을 먹이는데는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가정 사정을 설명한 다음 큰아이가 잘 먹지를 않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키는 같은 나이 또래에 비해 작지는 않은데 옷을 벗겨 보면 앙상해 뵌다는 것. 아무리 정성 들여 음식을 해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대신 돈을 달래서 가게에 나가 값싼 과자나 사 먹든지 냉장고를 뒤져 음료수만을 마시며 산다는 하소연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들까지 점점 누나를 닮아간다며 무슨 묘방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부인은 꽤나 극성스러운 편이어서 딸애가 어렸을 때부터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며 먹이는 습관을 들여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감정이 단순한 어린이들은 먹는다는 사실이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식사를 기피한다는 것은 그럴 만한 원인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어린이들의 식욕 부진 원인에는 정신적인 요인과 신체적인 요인이 있다.
어린이에게 무슨 옷을 입으라든가, 누구와는 놀지말라든가, 편애로 인한 소외감을 느낀다든가 하면 욕구불만이 생기는데 이를 풀 수 없을 때는 식욕을 잃어 먹는 것을 기피하게 된다. 반대로 식사 때 일정한 밥의 양을 꼭 먹도록 요구하고, 어느 반찬을 먹으라든가, 먹지 말라든가 계속 간섭하거나 주의를 줘도 어린이들은 식욕을 잃는 수가 있다.
정신적으로 억압을 받는 어린이의 식욕 부진 특효약은 야외 운동이다.
안 먹는 애들을 강제로 먹이려 하지 말고 자신이 먹을 것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밖에 나가 뛰어 놀도록 하되, 가능하면 단체가 노는 자리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 이렇게 되면 몸을 움직임으로써 육체가 새로운 에너지를 요구하게 될 뿐 아니라 집단과 소통하는 사이에 정신적인 억압 감도 해소되기 때문이다.
또 가정 내에서는 가능한 한 찬 청량음료의 준비를 줄이고 보리 차등으로 갈증을 메우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요즘은 방학으로 인해 생활 리듬이 깨어진데다가 냉수나 청량음료만 마시면 소화액의 분비가 감소되어 식욕을 잃기 쉽다.
더위에 지치거나 수면 부족, 몸에 열이 있을 때도 식욕부진이 있으므로 이럴 때는 부모가 관찰하여 원인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비타민 A·D·E·K 등 수용성 비타민이 부족할 때도 뚜렷한 병이 없이 권태로와 하고 식욕을 잃을 수가 있어 비타민의 보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칼슘과 비타 D를 계속 먹이면 두통·구토·식욕부진 등의 현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지나친 비타민 투여도 생각해 볼 문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