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6)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33)|소련서 휴전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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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정부가 휴전검토를 시작하고 있던 그 당시 미국민의 여론은 중공에 대해 험악했다. 중공이 유엔을 무시하고 있는 태도와 전쟁 중지 의사를 나타내지 않는데 대해 분개했다.
51년1월19일 미 하원은 중공에 대해 미국은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고 상원도 이를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에 맞추어 유엔에서도 중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앞에서도 말한 대로 영국·호주 등이 중공에 대한 신중한 자세를 주장하고 나와 미국은 다소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오스틴」미 유엔대사는 미국 내 여론대로 밀고 나갔다.「오스틴」대사는 결의안제안과 관련한 연설을 통해『지금 단계에서 유엔이 중공의 태도를 타진해 본다는 것은 유엔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이라고 반박하고『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굳은 결심을 가지고 서로 협조하여 침략에 완강히 대항해야만 집단안보체제가 확고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틴」대사에 이어 내가 발언했다.『우리는 지금 중공이 한반도에서 침략을 범하고 있는 사실을 엄연히 알고 있다. 유엔이 북괴의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규탄하면서도 중공에 대해서는 규탄을 주저하는 것은 모순이다. 휴전 협상 타당성 여부 등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은 중공을 격퇴시키는 방법에 경주되어야한다. 유엔군의 군사적 승리가 없이는 모든 지역의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당시 연설 때문에 미 중서부에 갔다가 돌아온 임병식 대표도 그후 발언을 얻어『한반도에 휴전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한국민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은 채 휴전이 되면 나중에 다시 쳐내려오고 말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미국은 점점 어려운 입장에 서게됐다. 유엔에서 우방들은 협상주장을 더욱 강하게 내세우고 국내에서 대중공 강경론이 수그러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서방국들은『한반도 문제는 궁극적으로 관련국가 합의가 없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므로 중공을 규탄만 해서 얻을게 없다』고 주장했다.
급기야는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에 대한 수정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미국은 달갑지 않지만 결국 수정안을 용납했다. 유엔은 2월1일「말리크」레바논 대사가 제출한「추가조치위」제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중공규탄부분은 살아있었다.
전쟁의 교착상태와 지루한 유엔의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발발 1주년이 가까운 6윌23일 소련부 외상 겸 유엔대표인「야코프·말리크」가「평화의 대가」라는 15분간의 유엔 라디오 프로를 통해 휴전협상의 필요가 있다는 최초의 공산측 제의를 비쳤다.
『소련 정부는 교전쌍방이 정전 가능성과 38선으로부터의 상호철군을 규정하는 휴전회담을 개시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만일 쌍방이 한국에서의 전투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한 진지한 요구가 있다면 이것은 평화를 위한 댓가로서는 결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공 강경론자인「맥아더」가 그해 4월12일 해임돼「매듀·리지웨이」중장이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된지 두달쯤 지난 후에 나온 이 제안에 대해 워싱턴의 중공 유화론자를 비롯해「트리그브·리」유엔사무총장, 영국·인도 등 휴전론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애치슨」국무장관은「커크」주소미국대사에게 소련공식입장을 확인토록 지시했다.
「커크」대사는「말리크」의 연설이 소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을「그로미코」외상대리를 통해 확인했다고 국무성에 보고했다.
임 대사와 나는「말리크」연설에 아연실색했다. 그러면서도 중공이 전쟁을 고집하는 한 미국은 전투를 계속해야 될 것이라는 관측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중공측은 휴전에 관해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커크」대사도 본국에 대한 보고에서 중공반응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무성은 즉각 참전 15개국 대사모임을 소집했다. 미국은 휴전에 응할 방침을 우방들과 함께 확정했다. 그리고 전임자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워싱턴의 지시에 순응하던「리지웨이」장군에게 훈령을 내렸다.
국무성은 아울러「무초」주한 미 대사에게도 이같은 결정을 알리고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통보토록 지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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